[수학 산책] 중세 시대 문서 아래쪽 여백 크기가 위쪽보다 두 배 큰 이유는?
입력 : 2022.04.14 03:30
흔히 수학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하죠. 그것은 수학에서 등장하는 여러 가지 비율이 사람들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때가 있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TV 화면의 경우 가로·세로 길이가 4:3 또는 16:9의 비율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것은 이 비율일 때 사람들이 화면을 보며 편안해지고 균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문서 제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A4 용지의 경우 가로와 세로는 각각 210㎜와 297㎜로 약 1:1.4의 비율인데요. 또 한글 프로그램에서 기본적으로 제시하는 문서의 양식은 A4를 기준으로 위쪽 여백 35㎜, 왼쪽과 오른쪽 여백 각각 30㎜, 아래쪽 여백 30㎜입니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은 어떤 미적 감각을 가졌을까요? 그들이 만든 책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서양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가장 오래된 문서는 독일의 금 세공업자였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8 ~1468)가 자신의 고향인 마인츠에서 성경 42줄을 인쇄한 '구텐베르크 성서'입니다. 구텐베르크는 1450년쯤 인쇄기를 발명했는데요. 이 성서는 인쇄기를 이용한 첫 출판물이랍니다. 1452년부터 3년에 걸쳐 인쇄됐지요.
중세 시대 인쇄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당시 문서를 미적으로 보기 좋게 만들려는 열망이 확산했다고 해요. 그 결과 인쇄업자들은 한 면에서 글자가 차지하는 넓이의 비율이나 네 가장자리 여백 크기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문서의 가로·세로 비율은 주로 1: 1.5였다고 해요. 오늘날 A4 용지의 비율(1:1.4)과 크게 다르지 않죠.
그런데 여백의 크기는 요즘 문서와 많이 다릅니다. 위쪽 여백이 1이라면 아래쪽 여백은 곱절 크기로 문서를 제작했어요. 왜냐하면 당시에는 아래쪽 여백에 페이지 수뿐만 아니라 책의 제목이나 챕터의 제목 등을 적어 넣었기 때문이에요.
이 비율은 중세 인쇄업자들 사이에선 '업계의 비밀'로 통했다고 해요. 왜냐하면 당시에는 인쇄술이 막 발전하던 시기여서 가로·세로와 여백의 비율을 정하는 것이 지금으로 치면 특허를 내는 것과 비슷한 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에요.
문서의 비율
문서 제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A4 용지의 경우 가로와 세로는 각각 210㎜와 297㎜로 약 1:1.4의 비율인데요. 또 한글 프로그램에서 기본적으로 제시하는 문서의 양식은 A4를 기준으로 위쪽 여백 35㎜, 왼쪽과 오른쪽 여백 각각 30㎜, 아래쪽 여백 30㎜입니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은 어떤 미적 감각을 가졌을까요? 그들이 만든 책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서양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가장 오래된 문서는 독일의 금 세공업자였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8 ~1468)가 자신의 고향인 마인츠에서 성경 42줄을 인쇄한 '구텐베르크 성서'입니다. 구텐베르크는 1450년쯤 인쇄기를 발명했는데요. 이 성서는 인쇄기를 이용한 첫 출판물이랍니다. 1452년부터 3년에 걸쳐 인쇄됐지요.
중세 시대 인쇄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당시 문서를 미적으로 보기 좋게 만들려는 열망이 확산했다고 해요. 그 결과 인쇄업자들은 한 면에서 글자가 차지하는 넓이의 비율이나 네 가장자리 여백 크기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문서의 가로·세로 비율은 주로 1: 1.5였다고 해요. 오늘날 A4 용지의 비율(1:1.4)과 크게 다르지 않죠.
그런데 여백의 크기는 요즘 문서와 많이 다릅니다. 위쪽 여백이 1이라면 아래쪽 여백은 곱절 크기로 문서를 제작했어요. 왜냐하면 당시에는 아래쪽 여백에 페이지 수뿐만 아니라 책의 제목이나 챕터의 제목 등을 적어 넣었기 때문이에요.
이 비율은 중세 인쇄업자들 사이에선 '업계의 비밀'로 통했다고 해요. 왜냐하면 당시에는 인쇄술이 막 발전하던 시기여서 가로·세로와 여백의 비율을 정하는 것이 지금으로 치면 특허를 내는 것과 비슷한 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에요.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