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족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최근 TV에 출연한 어느 의사가 농담처럼 이런 말을 했다. 10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병원을 찾는 할머니 환자 수가 갑자기 줄어들고, 수술이나 진료 날짜를 잡을 때도 이 기간만큼은 할머니들이 유독 피한단다. 이유는 하나, 김장철이기 때문이다.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김장문화는 김치 종주국 한국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다. 겨우내 우리 식탁을 굳건히 지켜주는 보물을 만드는 시간이니 집집마다 아주 중요한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김장하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머니·할머니들의 김장 사랑이 유난스러운 만큼 딸과 며느리는 힘들다. 배추·열무·청갓·쪽파 등 재료를 사는 일부터 다듬고, 씻고, 절이고, 썰고, 버무리고, 속 넣고, 통에 담고, 설거지까지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고백하건대 올해도 김장이 끝나고 친정엄마에게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제발 내년부터는 김치 좀 사서 먹자고.” “웃기시네. 사 먹는 김치 맛없다는 게 누군데.”
요리연구가 홍신애씨가 판내하는 김치 밀키트. [사진 인터넷 캡처]
그런데 올겨울 국내 포장 김치 소비량이 껑충 올라갈 것 같다. ‘김포족(김장하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올해 배추 작황이 안 좋아서 지난해보다 가격이 50% 이상 뛰었단다. 배추 한 포기 가격이 대략 5000원 안팎. 다른 김장 재료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1·2인 가구에선 포장 김치를 사 먹는 게 경제적이라며 ‘김포족’을 자처한다. 재료 준비하기는 귀찮고 입맛 맞는 김치는 먹고 싶은 사람들의 김치 밀키트 구매 횟수도 점차 늘고 있다.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우리의 김장문화는 언제까지 지속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