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48] ‘루페’ 가지고 다니는 남자
평소에 어떤 물건을 휴대하고 다니는가? 그 물건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과 정체성을 짐작할 수 있다. 필자는 노트북이다. 장소에 관계없이 수시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동하면서 여행하면서 쓰기 위해서는 노트북만 한 게 없다. 산세를 보러 다니는 풍수 전문가는 패철(佩鐵)이다. ‘패(佩)’는 허리에 차고 다닌다는 뜻이 있다. 휴대하고 다니는 지남철인 것이다. 루페(Lupe)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루페는 미세한 부분을 자세히 볼 수 있는 확대경이다. 이런 것을 왜 가지고 다니는 것일까? 이런 사람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알고 보니 명품 시계 전문가였다. 고가의 명품 시계를 감정해야 하는 직업인 최승용(43)은 2종류의 시계 감정용 루페를 가방에 넣고 가지고 다녔다. 한쪽 눈에 바짝 붙여서 보는 외눈박이 루페는 독일제였고, 다른 하나는 중국제였다. 만년필, 자동차, 주방용품은 독일제가 단연 우수한데, 이 중국제 루페만큼은 독일제 성능을 추월하고 있었다. 홍콩의 시계 장인들은 거의 이 제품을 쓴다고 한다.
우선 손잡이가 달려서 사용하기가 편리했고, 성능의 장점은 2종류의 불빛이 장착되어 있어서 잘 보인다는 점이었다. 할로겐램프와 LED였다. 할로겐램프를 켜서 시계를 들여다보면 스크래치가 생긴 부분, 즉 입체적 부분을 잘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반대로 LED로 보면 시계의 다이얼, 즉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판을 잘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독일제는 이 2가지 램프가 장착되어 있지 않았다.
몇 억원씩 하는 빈티지 명품 시계를 감정하려면 시계의 다이얼, 베젤에 손상이 있는가를 미세하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게 감정 포인트이다. 일상에서 고배율 현미경은 별 소용이 없고, 돋보기는 사전을 볼 때 필요한데, 루페는 이 돋보기 용도보다 좀 더 미세한 부분을 들여다볼 때 필요하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데에 렌즈 광학(Optics)의 매력이 있다.
중세 이후로 서양은 이 광학이 월등하게 발전하였지만, 동양은 이 광학이 발전하지 못했다.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하고 원양 항해에 도움을 주었다. 현미경으로 병균을 확인할 수 있었고, 돋보기로 작은 글자를 볼 수 있어 책의 부피가 줄었다. 책의 크기가 줄어드니까 자유로운 휴대도 가능했다. 지식의 보급은 광학의 도움으로 용이해졌던 것이다. 시계 같은 금속제품, 특히 미세한 금속 부품의 퀄리티를 좌우하는 필수 장비는 10배율 정도의 루페였다.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희영의 News English] 민주주의 對 도둑정치 (0) | 2022.05.24 |
---|---|
[동서남북] 말의 신뢰만 되살려도 성공이다 (0) | 2022.05.24 |
[조용헌 살롱] [1347] 인왕산의 산양 (0) | 2022.05.16 |
[윤희영의 News English] ‘어머니의 날’에 심금 울린 사진 한 장 (0) | 2022.05.10 |
[조용헌 살롱] [1346] 용의 알, 달항아리 (0) | 2022.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