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삼의 한자 키워드로

하영삼의 한자 키워드로 읽는 동양문화(1) : ‘眞’-동양式 진리의 출발

bindol 2022. 5. 27. 06:27
현상 뒤에 숨겨진 자명성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시공초월, 영원불변, 만고불변 진리는 없을 수도

동양을 어떻게 읽을까? 우리는 동양에 몸담고 살아 가지만 실제 이 지역의 문명적 맥락을 어떻게 읽을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다양한 방도 중에서도 우리가 비켜가기 어려운 산맥이 있다. ‘한자(漢字)’다. 동북아 지역 사람들의 감정과 사유는 이 한자를 축선(軸線) 삼아 종횡으로 펼쳐지는 경우가 많다. 중국의 굴기로 동북아 문명은 새 분기점을 맞고 있다. 세계의 중축으로 떠오르는 추세가 완연하기 때문이다. 이 기획은 12가지 한자의 어원과 의미 변천 과정, 서양과의 비교를 통해 그 배후에 담긴 문명과 문화적 의미를 톺아보는 기획이다. 주요 한자어를 통해 동양문화의 근원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1.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는 숨어 있는 것인가? 동양에서는 취중진담(醉中眞談)이라는 말이 있고(중국어로는 酒後吐言), 라틴어로 “In vino Veritas”라는 말이 있다. 비노(vino)가 와인(wine)이고 베리타스(Veritas)가 진리(眞理)이니, “술 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이다. 둘 모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드러낸다는 얘기다. 술만큼 인간을 진솔하게 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반영한다.

어쩌면 미래의 인공지능 시대에도 가장 인간적인 것이 술 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술을 마실 리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왜 옛사람들은 진리가 술의 힘을 빌려야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을까? 그렇다면 진리는 뭔가 언캐니(묘한)한 것, 즉 아주 친숙하면서도 자신의 내면에 꽁꽁 숨어 있는 그 무엇을 바탕으로 제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 아닐까?

진리가 시간이나 장소·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가? 진리가 보편적이고 자명한 것이라면, 그곳이 한국이든 미국이든 어디에서나 통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울러 조선시대에도 오늘날에도 두루 통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은 만고불변의 진리일까?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는 이 조항이 진리이지만, 군주제였던 조선시대에는 진리가 아닐 수 있다.

진리란 한 영화의 제목처럼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것일까? 상황에 따라 진리가 달라질 수 있다면 ‘대한민국 주권은 돈 많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돈에서 나온다’는 술자리에서의 주장도 진리가 아닌가? 그리고 [동물농장]의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인간은 다른 인간보다 더 평등하다’는 조지 오웰의 말도 우리가 보편적 진리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진술만큼이나 진리인 것은 아닐까?

진리는 분명하고 자명한가? 진리가 보편적이고 자명한 것이라면 역사 속에서 왜 “이것이 자명한 진리”라고 선언하면서 그것을 위해 때로는 목숨을 건 치열한 투쟁을 불사해왔던 것일까?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진리가 자명하다면, 미국의 독립선언서에서처럼 그 자명한 진리를 선언할 필요도 없고, 그 자명함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자명한 진리가 현실 속에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 선언이 필요한 것이며, 자명한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존재토록 하기 위해 진리 선언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이것은 역설(paradox)이지만, 진리가 호출되고 진리가 누군가에 의해 언급되는 자리는 진리가 이런 역설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진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진리가 자명한 것인 동시에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상식과는 반대로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마주하게 되면 진리만큼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도 없다. 그래서 필자는 한자의 ‘진(眞)’자 어원을 분석하면서 진리가 무엇인지, 고대 동양인들은 진리를 어떤 모습으로 상정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먼저 주류 서양철학에서 생각한 진리의 개념을 먼저 살펴보고, 이를 한자 진(眞)의 어원분석을 통해 비교해보도록 한다. 물론 도(道)의 어원과 그 의미도 이후 따로 살피게 될 것이다.

2. 서구에서의 의미
하버드 대학과 서울대의 상징 휘장. 진리와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라틴어가 들어가 있다.


진리에 대한 서양의 여러 입장 중에서 가장 전통적인 흐름이 있다. 진리를 사실과 말해진 것의 올바른 대응으로 설명하는 ‘진리 대응설’이다. 주류 서구철학사에서 진리는 사실과 대응하는 것, 즉 진리를 언어적 표상의 정확성으로 보는 것이었다. “있는 것을 있다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이고, 있는 것을 없다고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식이 이러한 진리 대응설의 가장 오래된 정의 중 하나다.

진리의 라틴어 어원은 베리타스(Veritas)다. 베리타스는 올바름, 참, 정확히 맞음을 말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판단과 사태의 엄정한 일치를, 플라톤에 의하면 이데아에 상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세 로마를 거쳐 근대에 이르면 베리타스는 설(J. Searle)이 주장하듯이 “한 진술이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대로 존재하는 것으로 표상할 때 참인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서 진리치(眞理値)는 진술과 사실과의 일치를 따지기 때문에 진리는 객관적이며, 고정돼 있다. 따라서 중세 이후 근대 주류 서양철학에서 진리는 진리와 가상, 참과 거짓이라는 이분법에 의해 설명되고, 현상 이면의 탐구가 아니라 드러난 현상에 대한 인식이 정말 맞느냐, 틀리냐를 따지는 것이 돼버렸다.

그래서 베리타스는 서구 철학의 근본적 목표였고, 학문이 풀어야 하는 숙명적 명제였다. 이것이 학문의 전당인 대학의 교시로 가장 자주 쓰였던 ‘베리타스’의 형성 배경일 것이다. 하버드 대학에도, 예일 대학에도, 우리의 서울대에도 학교를 상징하는 로고에 ‘Veritas’가 들어 있다.

그러나 로마 이전의 그리스 어원에서 진리는 ‘알레테이아(aletheia)’로, 라틴어의 베리타스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알레테이아는 ‘a’와 나머지 ‘letheia’로 구성됐는데 ‘a’는 ‘제거하다’, ‘드러내다’는 뜻이고, ‘letheia’는 숨겨진, 은폐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aletheia’는 숨겨진 것, 은폐된 것을 드러내는 일(Unverborgenheit, unconcealment)을 뜻한다. 베리타스가 말해진 것과 사태와의 일치를 상정한다면, 알레테이아는 그 어원에서 진리가 그러한 자명한 일치, 겉으로 보이는 자명한 현상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자명성을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3. 헤겔의 중국 비판

13세기 말에 들면서 마르코 폴로 등이 동양을 방문하고, 15세기 후반 대항해(大航海) 시대가 시작되면서 서구의 동양에 대한 관심이 증폭했다. 이를 계기로 동양, 특히 중국에 대한 연구가 벌어졌다. 그중에서도 19세기 초의 헤겔은 중국 연구에서 독보적 지위를 차지한다. 특별히 관심도 많이 가졌고, 관련 연구도 많이 남겼다. 이후 그의 연구는 서양의 중국 인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지울 수 없는 틀을 만들었다. 그로써 헤겔이 얻은 결론은 “중국에는 역사도 없고, 철학도 없다”였다.

굉장히 충격적인 선언이다. 그는 중국의 경우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흥망성쇠를 다했지만, 왕족의 교체만 있었지 진정한 역사의 변혁에 해당하는 발전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우선 인류의 역사를 소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 등으로 나눴다. 이어 문명이 시작된 메소포타미아는 소년기, 그리스 시대는 생기발랄한 청년기, 로마 시대는 장년기, 노르만 족이 활약하던 시기는 이성이 성숙한 노년기로 봤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디쯤 해당하는 것일까? 그는 서구 문명의 출발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년기’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당시의 중국은 아직 이성과 자유의 태양이 떠오르지 않은, 원시적이며 자연을 벗어나지 못한 우매한 단계에 놓여 있다고 했다.

게다가 국가는 하나의 거대한 ‘가정’으로, 개인은 도덕률에만 근거한 이 거대한 ‘가정’에 속한 ‘자식들’일 뿐이며, 개인적인 인격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중국은 개인의 자유의지도, 이상도, 정신도 존재하지 않는 ‘왕국’이라고 했다.

이상에 대한 연구가 없는 그곳에 과학이 존재할 리 없고, 이성에 대한 논의가 없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 것이며, 진리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철학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했다. 이러한 선언은 헤겔이 가지는 위상 때문인지 너무나 강력한 영향과 후유증을 남겼다.

그 대표적 예가 최근의 대다수 학자들까지도 중국에서는 ‘진리’를 나타내는 개념인 진(眞)이 한(漢)나라 때 처음 등장했으며, 이 글자에 ‘진리’라는 의미가 깃든 것도 불교가 유입된 이후의 일이라고 했다. 아무려면 중국 사상에 도덕적 상식만 존재하고, 사변적 사유는 부재했을까?

또 설사 부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문명과 야만을 구분 짓는 잣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편견이 아닐 수 없으며, 자기만의 역사에 근거해 타자를 규정짓는, 자기들은 문명이고 타자는 야만이라는, 극히 서구중심의 사유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포스트모던 시대로 접어들면서 상당한 수정을 거쳤지만, 세부적인 각론에서 서구의 편견이나 오인식을 바로 잡는 것은 동양 학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4. 중국에서 眞의 등장과 의미

 
정말 진리를 뜻하는 진(眞)은 한나라에 들어서야 출현하고, 서구의 진리라는 개념은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나 생긴 개념일까? 그래서 중국에는 진정한 진리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고, 출현도 매우 늦으며,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철학이 없었던 것일까?

서구 학자들의 이러한 인식은 상당부분 사실로 보인다. 진(眞)이 한나라 때의 사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처음으로 해석됐고, 거기서도 진(眞)은 ‘진리’나 ‘참’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쓰인 것도 아니며, 불교가 중국으로 유입한 후에야 글자에 진체(眞諦: 제일의 진리)라는 개념이 든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놓쳤던 것은 진(眞)의 실제 출현 시기도 그보다 이르며, 그전 진(眞)으로 분화하기 전의 글자가 이미 갑골문 시대부터 존재했으며, 게다가 다른 문화체계를 가진 중국에서 ‘진리’는 서구와 다른 방식의 다양한 인식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허신(許愼)이 편찬한 [설문해자]는 중국뿐 아니라 인류사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위대한 저작이다. AD 100년에 당시 볼 수 있었던 모든 한자라 할 9353자(최근의 복원 자료에서는 9833자)에 대해 일일이 그 자형의 유래와 의미, 의미파생 및 독음을 하나하나 밝혀놓은 방대한 한자어원사전이다. 약 1900년 전에 이렇게 방대하며 체계적인 어원사전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설문해자]에 등장하는 진(眞)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모습을 변화시켜 하늘로 올라가는 신선의 모습을 그렸다. 제일 위쪽 부분은 화( ), 가운데 부분은 목(目)과 은( )으로 구성됐으며, 제일 아래쪽 부분은 하(∥)로 구성돼 타고 올라가는 기구를 그렸다. 진( )은 진(眞)의 고문체이다.(僊人變形而登天也. 目; ∥,所以乘載之. 古文眞寶)

그러나 [설문해자]의 방대한 목록 중 진(眞)의 자형만큼 그 설명이 모호한 것은 없다. 허신은 진(眞)을 화( : 化의 원래 글자)와 목(目)과 은( )과 하(∥)”의 네 부분으로 분리해 ‘신선’을 모습을 그린 것으로 해석한다. 도교적인 색채가 명백한 부분이다.

그러나 뭔가 복잡하고 잘 이해되지도 않으며, 당시의 자형 또는 의미와도 잘 맞아떨어지지가 않는다. 위대한 한자 학자 허신이었지만, 그 당시에 이미 진(眞)자의 원형과 변화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변화가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20세기 후반에 들어 대량으로 출토된 춘추전국시대 때의 청동기 명문에서 그 원래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는데, 진(眞)은 기본적으로 ‘화( )’와 ‘정(鼎)’으로 구성됐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때에 따라서 ‘정(鼎)’은 ‘패(貝)’로 변하기도 했으며, 독음을 나타내고자 ‘정(丁)’이 더해지기도 했고, 정(鼎)의 아랫부분이 ‘기( )’로 변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모두 ‘화( )’와 ‘정(鼎)’으로 구성된 기본형에서 변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를 가진 진(眞)은 사실 그전의 갑골문에서 다름 아닌 정(貞)자였다. 즉 정(貞)자에서 분화된 글자였다.

5. 진(眞)과 정(貞)의 관계

 
정(貞)은 갑골문에서 매우 중요한 글자이며 자주 등장한다. 지금은 복(卜)과 패(貝)로 구성된 정(貞)으로 쓰지만, 갑골문 당시에는 복(卜)과 정(鼎)으로 구성된‘정( )’으로 썼는데, 정(鼎)이 간단한 모습의 패(貝)로 변해 지금처럼 정(貞)이 됐다. 정(貞)을 구성하는 복(卜)은 거북점을 칠 때 불로 지진 곳이 갈라진 모습을 그린 글자이고, 이 갈라진 모습이 점괘를 해석하는 근거가 된다. 그래서 복(卜)이 ‘점을 치다’는 뜻을 가진다.

정(鼎)은 신에게 제사를 드릴 때 쓰던 다양한 기물, 즉 청동 예기(禮器)의 대표다. 그래서 정(鼎)은 제기를 상징하면서 또한 권력을 가리켰다. 그래서 ‘세발 솥’을 지칭하는 정(鼎)은 국가나 조정을 뜻하기도 했으며 구정(九鼎)은 천자(天子)의 나라를 뜻한다. 갑골문 시대에는 정(鼎) 그 자체로‘(신에게) 묻다’는 뜻의 동사로도 쓰였다. 신권 통치가 이뤄졌던 상(商)나라 당시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복(卜)과 정(鼎)으로 이뤄진 정(貞)도 당시에는 ‘신에게 묻다’는 뜻이었다. [설문해자]에서도 정(貞)을 “물어보다(問也)”라는 뜻으로 풀이했고, 한나라 때의 위대한 경학자 정현(鄭玄)도 “나라에 큰 일이 있으면 거북점이나 시초(蓍草)점을 쳐 물어본다”라고 했다. 신에게 거북점을 통해 국가의 중대사를 물어보고 그 갈라진 흔적을 보면서 신의 뜻과 의지를 해석해 내던 점복관(占卜官)을 ‘정인(貞人)’이라 불렀다.

 
갑골문에서 ‘정인’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들은 성직으로 세습됐고, 어떨 때는 왕이 직접 이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만큼 중요하고 성스러운 존재였다. 물론 지금은 당시의 뜻을 잃어버리고, ‘곧다’, ‘정직하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마치 복(卜)의 자형처럼 불에 의해 쩍쩍 직선으로 갈라지는 거북딱지의 흔적에서 ‘곧다’는 뜻이, ‘신의 의지를 정확하게 해석해 내다’는 뜻에서 ‘정직하다’의 뜻이 나왔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진(眞)’의 자원과 ‘진리’의 근원은 신의 의지를 묻는 점복 행위를 지칭하는 ‘정(貞)’에서 찾을 수 있고, ‘정(貞)’이 ‘정(正)’, 즉 옳다는 뜻으로 해석된 것은 점복 행위 이후에 사후적으로 확립된 뜻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정(貞)’과 통용되는 ‘정(鼎)’은 신의 의미를 묻는 점복 관련 의식의 상징이며, 의식의 대표 기물인 정(鼎)으로 해당 의미를 강조했다고 풀이할 수 있다. 더구나 이러한 행위가 점복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복(卜)’을 더한 ‘정( )’을 탄생시켰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어에서 진리가 ‘탈(a)’ ‘은폐(letheia)’를 의미하는 ‘알레테이아(aletheia)’에서 ‘베리타스’로 옮겨갔듯이, 중국에서도 숨겨져 있는 신의 의지를 묻기 위해 점복을 행하고, 갈라진 거북딱지의 흔적으로 보면서 ‘은폐된 신의 의지를 묻는’ 행위에서, 사후적으로 이 행위를 통해 정확성을 확증하는 과정은 서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인간에게 드러나는 행위인 정(貞)과 그런 행위를 주관했던 정인(貞人)이 바로 ‘진리’의 출발이자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6. 한나라 이후의 변화

이렇듯 한나라 [설문해자]에서 처음 해설이 붙여진 진(眞)은 사실 한나라가 아니라 훨씬 이전의 주나라 때부터 등장했다. 게다가 그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상나라 갑골문의 정(貞)자가 이의 원형이며, 정(貞)은 거북점을 통해 ‘신의 의지를 물어보고’ ‘그 숨겨진 의지를 드러내는’ 점복행위에 기원을 둔다.

다만, 전국시대 말과 한나라 초기에 들면서 신선 사상의 유행으로 우주만물의 변화원리를 터득한 사람을 지칭하는 ‘진인(眞人)’이 등장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진(眞)이 정(貞)과 점차 분리됐다. 그 과정에서 새로 만들어진 진(眞)이 진인(眞人)을 지칭해 원래의 의미를 계승했다면, 정(貞)은 파생 의미인 ‘곧다’와 ‘옳다’의 뜻으로 그 역할을 분담했다. 그러다가 외래의 불교가 들어오면서 ‘진리’라는 개념을 진(眞)으로 표기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이렇게 보면, 중국에서의 진(眞)은 사실 [설문해자] 훨씬 이전에 등장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 갑골문 시대의 정(貞)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진(眞)의 원형이 되는 정(貞)은 그리스어에서 ‘진리’를 뜻하는 ‘알레테이아(aletheia)’, 즉 ‘탈(a)’ ‘은폐(letheia)’와 다르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중국이라고 서양과 다를 것이 없었다. 진리를 이렇게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개념화하게 되면 그것은 인간의 실재(reality)의 대면이자, 인간의 실천과 무관하지 않은 동양적인 사유와 만나게 된다.

게다가 중국인들은 환경적 요소 때문에 서구와는 다른 발전 방향을 취했다. 즉 표상하는 개념이 있을 때 비로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서구인들과는 달리, 한나라 이전의 중국인들은 진리란 수행적인 것이지 언어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서구인들처럼 “진리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으며, 그보다는 행함(doing), 혹은 어떻게 올바른 행동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그들의 관심사로 삼았다. 그들에게서 주체와 객체, 혹은 인간과 세계는 이분법적 관계 속에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전일적인 일자의 관계 속에 거주한다. 이러한 전통은 직관을 통한 앎과 연결되는 것으로, 논리학이나 인식론을 통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논리가 없다고 해서 진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동양에서는 단지 언표의 차원에서 진리를 고려하지 않았을 뿐이다. 동양은 개념을 역사적이고 인류학적인 맥락에서 분리시키지 않았고, 물질 속에 이성이 내재하고 이성 속에 물질이 내재한다는 전일적(全一的) 관점을 취해왔다. 그래서 서양에서 분석철학이 지배적이라면 동양에서는 해석학이 중요한 문제가 됐다.

그러므로 사유의 방향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한자에서 서구 사유에 상응하는 요소를 찾아내는 일이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아울러 서구의 ‘진리’에 해당하는 번역어를 한자에서 찾아내는 것이 ‘진리’ 탐구의 접근방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영어에 관계대명사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중국어에도 이에 상응하는 문법소가 있어야 하고,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열등한 문화라는 식의 오리엔탈리즘에 다름이 아니다.

7. 오리엔탈리즘의 극복과 한자

이렇게 서구철학이 동양에 수입될 당시의 지배적이었던 진리관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진(眞)’의 출현이 [설문해자]에서야 등장하기 때문에 그전의 중국에는 진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 그리고 진리와 허위의 짝패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리가 없다는 주장은 이론적이나 어원적으로도 성립할 수 없다. 즉 ‘진(眞)’에 대한 문자학적 분석을 통해 ‘진(眞)’이 등장하기 전, ‘진(眞)’의 더 오래된 형태가 어떻게 진리를 표현했는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며, 그와 동시에 은폐된 것을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진리의 근원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자는 동양문명의 핵심이다. 철학 문헌이 형성되기 이전의 근원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심지어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숱한 기억이 담겨 있다. 그래서 한자의 어원 연구는 동양 문명의 근원 연구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동양은 이 한자를 기반으로 문명을 형성해왔다. 데리다가 서양 문명을 ‘음성중심주의문명’, ‘로고스중심주의 문명’이라 칭했다면, 동양문명은 ‘문자중심주의 문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구의 음성이나 로고스와 동양의 문자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들 간에 문명과 야만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다음 호에서 논하기로 한다.

※ 하영삼 - 경성대 중국학과교수,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사)세계한자학회 상임이사. 부산대를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자 어원과 이에 반영된 문화 특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 [한자어원사전] [한자와 에크리튀르] [한자야 미안해](부수편, 어휘편) [연상 한자] [한자의 세계] 등이 있고, 역서에 [중국 청동기시대] [허신과 설문해자] [갑골학 일백 년], [한어문자학사] 등이 있고, [한국역대한자자전총서](16책) 등을 주편(主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