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냉면이란 무엇인가?
[아무튼, 줌마]
냉면을 처음 맛본 건 대학교 1학년 때입니다. 평안도가 고향인 김옥길 선생 자택에 학보사 기자들이 초대받아 평양냉면과 빈대떡을 먹게 되었는데요. 시인 백석이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라고 예찬한 냉면을 반도 못 먹은 충청도 출신 여대생은 ‘아, 이 밍밍하고 심심하고 거뭇거뭇한 이 음식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며 젓가락을 내려놓았지요.
그 냉면을 다시 만난 건 조선일보에 들어와서입니다. 여름이 돌아오면 조선일보 기자들은 사흘이 멀다 하고 냉면집으로 달려갑니다. 타사에서 조선일보로 옮겨온 기자들은 전 직장에선 1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한 냉면인데, 하루에도 점심 저녁 두끼를 냉면으로 채우는 선배들을 보면서 혀를 내두르지요. 덕분에 저도 우래옥, 을지면옥, 평양면옥, 필동면옥, 을밀대 등지를 순례하며 도무지 그 맛의 차이를 모를 냉면을 선배들 열띤 ‘강의’까지 들어가며 먹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득도하듯 냉면의 맛에 눈을 뜬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장충동 평양면옥에서였습니다. 30분을 줄 서다 들어가 배가 몹시 고픈 탓도 있었고, 푹푹 찌는 날씨에 갈증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이유도 있었을 겁니다. 식초는 육수가 아니라 면발에 뿌려야 한다는 선배 기자의 지엄한 지침을 이행한 뒤 국물부터 들이켜는데, 아! 세상에 이렇게 맑고 구수하고 깊은 맛이 있었던가 싶은 게 대야만 한 그릇에 가득 담긴 물냉면을 게눈 감추듯 비웠지요.
<아무튼, 주말>을 마감하는 지난 목요일 점심에도 무교동에 분점을 낸 을밀대에서 냉면을 먹었는데요. “이북 사람들은 얼음 둥둥 뜬 냉면은 평양냉면으로 안 친다”로 시작해 “냉면은 삼분의 일은 그릇에, 삼분의 일은 입속에, 삼분의 일은 배 속에 넣고 먹어야 제 맛” “냉면은 가위로 자르는 게 아니라 목(구멍)으로 자르는 것” 등등 각종 엽기적인 ‘면스플레인’(면+explain)을 들으며 유쾌하게 무더위를 날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뉴스레터에는 11년 전 전국에 냉면 열풍이 불었을 때 평안도, 함경도 실향민 100명이 꼽은 최고의 냉면집을 소개한 ‘Why?’ 기사를 배달해드립니다. 어느 집이 제일 맛있는지 함께 품평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QR코드와 인터넷(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5743)을 통해 들어오시면 구독 창이 열립니다.
아, 몇 년 전 김동길 박사님 댁에 놀러가 40년 전 그 냉면을 다시 맛보았는데요. 저도 맛의 미성년기를 벗어났는지 수수하고 슴슴한 그 냉면이 눈물나도록 맛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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