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 [1] 팬데믹의 끝
중국에서 들어오는 입국자만 막으면 팬데믹을 막을 줄 알았다. 수학적 모델링 기법에 의존한 ‘록다운’(lock down·이동 제한 등 봉쇄)이 팬데믹을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다.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성공할 줄 알았다. 나중에는 백신만 맞으면 ‘게임 체인지’가 될 줄 알았다. 3차 접종까지 했지만 팬데믹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과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과학을 ‘사이언스’와 ‘리서치’로 나눈다. 교과서에 실린 과학인 ‘사이언스’는 확실한 지식이다. 반면에 연구 프런티어를 개척하는 ‘리서치’는 불확실하고 논쟁적이다. 팬데믹과 관련된 모델링, 마스크, 거리 두기, 방역 지침 모두 ‘리서치’ 과학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통일되지 않고, 논쟁이 일상적이며, 오류와 실수가 다반사다.
수천만명을 사망케 한 1918~1919년의 스페인독감은 바이러스를 박멸해서가 아니라, 많은 이들이 면역을 형성하고 바이러스의 독성이 약한 쪽으로 변하면서 사라졌다. 백신이나 치료제도 없었다. 1922년에도 독감에 의한 사망이 보고되지만, 이때는 이미 팬데믹이 끝나 있었다.
과거의 팬데믹과 달리 지금은 숫자가 넘쳐난다. 한국과 외국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실시간 보도되고 비교된다. 매일 아침은 어제의 확진자와 사망자의 숫자로 시작한다. 우리는 확진자와 사망자가 0이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그래야 팬데믹이 끝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0이 되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인구의 100%가 백신을 맞는 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감염병도 이런 식으로 종식되지 않았는데, 팬데믹의 끝은 일종의 ‘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이다.
작년 말에 ‘코로나19 일상회복 지원위원회’가 출범했다. 위원회는 확진자와 사망자의 숫자를 줄이는 방법만 고민하지 말고, 이런 숫자에 신경을 끄는 방법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확진자나 사망자의 숫자에 신경을 끄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시점이 팬데믹이 끝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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