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한 골짜기에 꾀꼬리는 벗을 부르는데(幽谷聽鶯如喚友·유곡청앵여환우)
초가을 물색이 비 오고 나서 새로운데(初秋物色雨餘新·초추물색우여신) / 개울가 좋은 놀이는 아름다운 날의 일이네.(溪上佳遊屬令辰·계상가유속령진) / 그윽한 골짜기에 꾀꼬리는 벗을 부르는데(幽谷聽鶯如喚友·유곡청앵여환우) / 작은 부엌에서 개장국 끓여 손님을 붙드네.(小廚烹狗可留賓·소주팽구가류빈) / 청풍계 궁벽하니 인간 세상 아닌 듯하고(靑楓洞僻疑非世·청풍동벽의비세) / 태고정 한가로워 먼지 덮어쓰지 않았네.(太古亭閑不染塵·태고정한불염진)/ 한참 앉아있으니 삼복더위를 잊겠고(坐久頓忘三伏熱·좌구돈망삼복열)/ 저녁 무렵 굽은 물가로 자리를 옮겼네.(晩來移席曲池濱·만래이석곡지빈)
18세기 문인 김영행(金令行·1673~1755)의 시 ‘말복 날 청풍계에서 함께 시를 짓다(末伏日會話楓溪同賦·말복일회화풍계동부)’로, 그의 문집인 ‘필운시고(弼雲遺稿)’ 제2책에 실려 있다.
말복과 입추가 겹치는 날 김영행은 이병연(李秉淵)·신성하(申聖夏) 등과 인왕산 자락의 청풍계(靑楓溪)에 있는 정자인 태고정(太古亭)에 모여 시회를 즐겼다.
비 오고 난 뒤여서 물색도 좋고 꾀꼬리가 우는 정자에서 개장국을 끓이고 노느라니 삼복더위를 잊는다. 문사들은 절기마다 모여 수창(酬唱)을 하였다. 서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지만, 시도 주거니 받거니 하였다. 시를 주고받는 모습은 이러했다. 시를 한 수 읊어 함께 자리한 다른 사람에게 준다. 그러면 시를 받은 사람은 답시를 지어 주어야 한다. 요즘말로 하자면 흥이 있고 풍류가 있었다.
비단 양반들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백대붕(白大鵬)과 유희경(劉希慶) 등의 천민 신분도 임진왜란 이전부터 시를 지었다. 유희경의 연인이자 허균의 시우였던 기생 매창(梅窓)은 시집까지 남겼다. 18세기에 들어서면, 중인·서얼·서리 출신의 하급관리와 평민도 활발하게 시작 활동을 하였다.
올해는 유난히 무덥다. 하루하루 견디다 보니 벌써 입추가 지났고, 어제는 말복이었다. 예전에는 말복에 더위도 식히고 영양 보충도 할 겸 개장국을 많이 끓여 먹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이 기겁을 하지만, 당시의 삶을 이해하면 굳이 뭐라 할 것도 아니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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