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10> 동물을 함부로 잡아먹는 문제를 논한 지봉 이수광

bindol 2022. 5. 31. 17:50

여서 그것을 먹는 것을 꺼리지 않으니(殺而食之不忌·살이식지불기)

 

살아있음을 사랑하고 죽음을 싫어함은 사람과 동물이 같다. 다만 사람은 지혜가 있지만, 동물은 지혜가 없다. 사람은 말할 수 있으나 동물은 말할 수 없다. 사람의 힘은 동물을 제압할 수 있으나 동물은 사람을 제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죽여서 그것을 먹는 것을 꺼리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하늘의 이치이겠는가?

愛生惡死, 人與物同也. 但人有智而物無智, 人能言而物不能言, 人力能制物而物不能制人. 故, 殺而食之不忌, 此豈天理?(애생오사, 인여물동야. 단인유지이물무지, 인능언이물불능언, 인력능제물이물불능제인. 고, 살이식지불기, 차기천리?)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1563~1628)이 1614년(광해군 6)에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그가 서거한 뒤 아들 성구(聖求)와 민구(敏求)가 1634년(인조 12) 출간했다.

사람이 동물에 비하여 월등하다. 문명의 이기를 만들고 발전시켜 사용한다. 여러 기구 등을 이용하여 동물을 제압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동물을 잡아 식용한다. 사람과 동물은 모두 똑같이 살아있음을 좋아하지만, 죽는 걸 싫어한다.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개도 자신을 죽이려고 끌고 갈 때는 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친다. 요즘 개 식용 금지를 법제화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많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다. 예전에 먹을거리가 많지 않았을 때는 개고기가 최고의 보양음식으로 대접받았다. 필자가 예전에 외국에 다니면서 여러 나라의 시골에서 개고기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 위구르자치구의 파미르고원 아래에 있는 카슈가르시장에서 양 꼬치를 맛있게 먹는데, 바로 옆에 큰 양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양의 순한 눈과 마주쳤다. 알고 보니 죽을 차례를 기다리는 녀석이었다. 주인이 즉석에서 잡아 양 꼬치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 숙소에서 먹은 양고기를 모두 토해냈다.

위 글의 요지는 사람이 동물을 함부로 잡아먹는 게 반드시 정당한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모든 생명의 존귀함을 역설하고 있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