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74> 언양 집청정에 올라 시 읊은 김용한

bindol 2022. 6. 2. 05:54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74> 언양 집청정에 올라 시 읊은 김용한

은자를 기다리네, 가라 재촉 마시게

    •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
- 且待幽人去莫催·차대유인거막최

집청정 아래쪽 망선대에는(集淸亭下望仙臺·집청정하망선대)/ 소나무 푸르건만 학은 오지 않네.(松自靑靑鶴不來·송자청청학불래)/ 화창한 봄날에 시냇물 소리 내 흐르는데(風和日暖溪流㶁·풍화일완계류획)/ 은자를 기다리네, 가라 재촉 마시게.(且待幽人去莫催·차대유인거막최)

염수헌(念睡軒) 김용한(金龍翰·1738~1806)의 시 ‘登集淸亭’(등집청정·집청정에 올라)로, 그의 문집 ‘念睡集’(염수집)에 있다. 그는 울산 언양 사람으로 1769년(정조 13) 지역에서는 드물게 진사시에 합격한 문사이다. 집청정은 유명한 반구대 암각화로 가는 길목에 있는 정자다. 집청정 앞 계곡 건너 반구대(盤龜臺)가 있다. 주변 소나무에 청학이 날아들고 신선이 바둑을 두며 노닐었다는 전설이 있다.

고려 때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가 반구대에 올랐다 하여 포은대로 명명된 바위가 있다. 위 시에서 은자는 아마도 정몽주를 가리키는 것 같다. 겸재 정선이 집청정에서 반구대를 보며 그린 ‘반구(盤龜)’라는 그림도 있다. 집청정 난간에 앉아 반구대를 바라보면 신선이 된 기분이 든다.

망선대는 반구십영의 하나다. 최종겸(崔宗謙·1719~1792)은 반구대십영(盤龜臺十詠)을 읊었다. 그 중 ‘망선대’(望仙臺)는 이러 하다. “까마득한 반구대, 천 길이나 솟았고(蒼茫臺千仞·창망대천인)/ 바위 사이에는 한 구름 피어나네.(白雲出其間·백운출기간)/ 이곳에서 안기생(봉래산 신선)을 만날 것 같으니(安期庶幾遇·안기서기우)/ 봉래산이 가까이 있나보다.(咫尺蓬萊山·지척봉래산).” 최종겸이 읊은 반구십영은 집청정·비래봉·향로봉·옥천동·포은대·선유대·관어석·망선대·완화계·청몽루다.

집청정은 1713년 경주 최씨 가문 운암(雲巖) 최신기(崔信基·1673~1737)가 이곳에 귀양 왔던 정몽주를 기리고 문사들과 교유하면서 수양하고자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건물은 1932년 중수한 것으로 최신기의 후손이 거주한다. 필자는 그 후손에게서 집청정에서 시를 읊은 선비들 작품을 모은 ‘집청정시집’ 복사본을 구해 2014년 집청정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엊그제 울산에 사는 지인에게서 “집청정 가서 신선놀음 한 번 합시다”는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