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100년 산책

한미동맹은 자유와 평화를 위한 역사적 사명에서 태어났다

bindol 2022. 6. 11. 05:28

한미동맹은 자유와 평화를 위한 역사적 사명에서 태어났다

중앙일보

입력 2022.06.10 00:34

지면보기지면 정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내 큰딸 H는 1960년대에 미국 유학을 갔다. 대학 기숙사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가까이 있는 교회에서 외국 유학생들을 위한 저녁 파티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키가 작고 어려 보이는 편이지만, 가지고 갔던 한복을 입고 참석했다. 한국 학생은 혼자뿐이었다. 자기소개 시간에 인사를 했는데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부인이 옆자리로 다가와 “당신이 H양이냐”고 물었다. 한국 유학생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만나고 싶었다면서 친절히 대해 주었다. 그 부인은 내 딸에 관한 얘기와 한국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공식 순서가 진행되었다. 그 부인은 시종 H의 모습을 살피면서 친절과 사랑이 넘치는 후의를 베풀어 주었다. 파티가 끝나게 되었을 때, “우리 집으로 초대하고 싶은데 올 수 있으면 감사하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전화번호를 나누어 갖고 헤어졌다. 내 딸은 객지에서 어머니처럼 느껴졌는데 어딘가 마음의 아픔을 안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6·25때 참전·전사한 미국 청년들
한국인 자유·평화 위해 목숨 바쳐
자유 억압, 인권 침해는 범죄 행위
무력 신봉하는 세력 용납해선 안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연락을 받고 약속했던 대로 저녁 식사를 겸한 시간에 그 부인 집을 찾아갔다. 여러 가지 한국 얘기를 나누다가, 하나밖에 없는 그 집의 아들이 6·25전쟁 때 한국에 출전했다가 전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중공군이 남침해 들어오면서 함경도 전선에서 소식이 끊어진 것이다. 한국의 하늘이 한없이 맑은데,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정착되면 부모님과 함께 와보고 싶다는 편지가 뒤늦게 전달된 것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그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식사를 끝내고 커피를 마시면서 들려주었다. 식사 전에 들었다면 음식을 먹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부인이 ‘우리 아들 방을 보겠느냐’면서 안내해 주었다. 아들이 쓰던 서재 방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었다. 책상 오른쪽에 젊은 청년이 밝은 웃음을  띠고 찍은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에서 그의 아들이 당장이라도 방문을 열고 들어올 듯이 정답게 보였다. 내 딸이 자기도 모르게 부인 품에 안기면서 울어 버렸다.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겨우 눈물을 닦고 안정되었을 때, 그 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는 괜찮아졌어요. 내 아들은 한국 사람들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요. 평화롭고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아들의 자랑스러운 생애를 기억하고 싶어요” 라고 했다. 내 딸은 기숙사에 돌아와 많이 울었다고 했다.

내가 하버드대학에 머물 때는 일요일이면 하버드 야드에 있는 넓지 않은 예배당에 참석하곤 했다. 채플 오른쪽 벽에는 재학 중에 한국전쟁에 출전했다가 전사한 학생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었다. 20여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볼 때마다 나와 우리 한국인들이 빚진 죄인 같은 심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 죄의식에서 풀려나기 위해서라도 자유와 평화를 빼앗기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주어진 의무를 감당해야겠다는 ‘인간다운 삶의 도리와 의무’를 되새기곤 했다.

지금도 한국을 찾아오는 미국과 다른 참전국 6·25때 노병들은 모두가 같은 뜻을 전해 준다. 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전우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한미동맹은 6·25전쟁을 계기로 맺어졌다. 그러나 그 뿌리는 자유와 평화를 위한 휴머니즘의 결실이었다.

금년은 6·25전쟁 72주년이 된다. 시간이 허락되면 한 번 더 현충원과 부산의 유엔묘지를 찾아보고 싶다. 6월이 다 가기 전에. 누구를 위해, 왜 그런 비극적 죄악의 역사를 만들어야 했는지. 그 많은 희생의 죗값을 누가 감당해야 하는지 묻고 또 물어도 해답을 찾을 수 없다. 그렇게 동족간의 비극을 저질러 놓고도 나와 우리가 잘못했다는 책임자는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북한을 비롯한 세계 몇 곳에서 핵무기 운운하는 정치 지도자들까지 등단하고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철학자인 B.러셀이 남긴 글이 회상된다.

“정권욕의 노예가 된 어리석은 정치가들이 원자핵 폭탄을 만들어 사람들 모두가 머무는 대 강당 한가운데 장치해 놓았다. 그리고는 그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경고문을 써 붙였다. ‘돌이나 담뱃불을 던지면 폭발할 위험성이 있으니까 주의하라. 우리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다’라고. 그리고는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는 정치 지도자들의 자랑거리로 삼는다. 돌과 담뱃불을 자신들이 쥐고 있으면서.”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의 선택과 책임은 무엇인가. 그런 정권 밑에 사는 모든 사람이 양심과 용기를 갖고 자유와 평화를 위한 횃불을 들어야 한다. 폭력은 언제 어디서나 죄악이며 전쟁의 주동자는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자유 억압과 인권 침해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이다. 그 책임자와 가담자는 자유와 인간애가 있는 사회에 공존할 자격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종교와 도덕은 물론 인류 공존의 가치인 자유와 평화는 인간 존재의 절대조건이기 때문이다.

자유 민주주의는 휴머니즘의 목표와 방법을 구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삶의 선한 가치와 희망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 무력과 정권을 우상으로 신봉하고 따르는 정치세력은 세계 어디서나 용납될 수 없고, 존재해서는 안 된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