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검승부 준비하는 법원과 검찰
청와대 요청에 조치한 결과 보고서
실체 확인차 청구한 영장 줄기각
검찰 "끝까지 ‘마이웨이’ 할 수밖에”
피의자측 "대외비 재판 자료 주면
대법원장, 대법관도 탄핵 대상”
압수 문건들엔 재판 개입 선 그어
- 질의 :검찰이 진격 중이다. 수사에 진전이 있나.
- 응답 :“깜짝 놀랄만한 게 있다. 임종헌(59·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서 압수한 USB와 이규진(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자진 제출한 업무 수첩, 고(故)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이 작성한 비망록, 정호성 전 비서관의 기록(녹음파일)상 일정과 기재 내용을 비교하면 아귀가 딱 맞는다. 네 개의 자료에서 대법원 관련 부분 자료를 맞춰보면 일치한다. 김 전 수석과 정 전 비서관은 위에서 지시받은 얘기를 쓴 것이니까 그 때(국정농단 수사)는 이게 뭐지 했는데 이번에 네 명이 일치하니까...”
사법농단, 재판거래가 사실이라고 믿는다는 거였다.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을 다시 꺼내봤다. 2014년 9월 6일의 기록에는 ‘법원 지나치게 강대, 공룡화… 견제수단 생길 때마다 다 찾아서 길을 들이도록 (상고법원 또는) 다 찾아서’라고 쓰여 있다. 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1심 판결이 나온 9월 11일에는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을 뜻하는 ‘장’ 아래 ‘元-2.6y, 4유, 停3’이라고 적혀 있다. 실제 선고 형량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이었다. 오후 2시의 선고결과를 오전 회의 때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 질의 :그 일정 및 기재 내용이 일치해도 재판 거래가 실제 있었는지는 증명이 필요하지 않나.
- 응답 :“그래서 압수수색영장을 치는 건데 영장전담판사들은 법원행정처가 자진 제출할 거라며 기각하고 행정처는 안 내준다. 제일 빈번한 기각 이유가 ‘재판의 독립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밝혀져서 욕먹는 것과 감춰서 욕먹는 것 중에서 후자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검찰)도 예전에 그렇게 하다가 결국 다 내놨다. 이용호 게이트, 우병우 사건이 그랬다.”
검찰이 재판 거래로 의심하는 대표 사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이다. 김기춘 전 실장이 2013년 12월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을 만나 1·2심 판결이 원고 승소로 결론 난 이 사건의 상고심 선고를 늦춰달라고 요청했고 그대로 됐다고 검찰은 본다. 상고법원 도입 협조가 반대급부였다고 의심한다. 해당 사건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류 중이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관여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우리가 압수수색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건 재판 거래 의심 사건들과 관련해 앞뒤 보고서가 있을 것이라고 봐서다. 일이 발생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게 왜 없겠나. 일부를 잠시 감출 순 있지만 모든 걸 오래 감출 수는 없다.”
- 질의 :이번 수사의 의미는.
- 응답 :“관료사법 시스템의 극치를 보여 준 것이다. 이런 사법시스템이 유지되면 안 된다. 1·2·3차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소장 판사들이 다 봤다. 조금만 어영부영하면 불쏘시개가 날아오니깐 수사를 그만할 도리가 없다. 끝까지 ‘마이 웨이’할 수밖에 없다.”
검찰은 수사팀을 확충했다. 특수 1·3·4부에 2부까지 투입해 검사만 30여명으로 늘렸다. 수사에 협조적인 이규진 전 위원을 매일 불러 조사한다. 사법농단 수사에 올인하다 보니 서울중앙지검의 민생 사건은 사실상 올스톱 상태라고 한다.
수만건의 문건이 들어있는 USB를 압수당한 임종헌 전 차장은 강제징용 손배소송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사건 등에서 이규진·유해룡·김종필과 연결되는 핵심 인물이다. 추석 연휴 직후 소환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차장 및 사건 관련자의 변호인들과 대법원 고위 당국자를 두루 만나 대응 전략을 듣고 문답으로 정리했다.
- 질의 :검찰은 네 명의 업무일지 기록 등이 일치해 재판 거래가 사실이라고 믿는다.
- 응답 :“김영한 전 수석 비망록에 원 전 원장의 1심 선고 형량이 적혀 있는 것 등을 말하는 것 같다. 상고법원 도입을 원하던 법원행정처가 미리 알려준 것 아니냐는 건데 그건 정보기관이 파악해 보고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기춘 전 실장이 알려준 걸 적은 것 아닌가. 만에 하나 우리가 그런 정보를 준다 해도 차장은 카운터파트인 법무비서관, 처장은 민정수석에게 알리지 직접 윗선인 비서실장에게 할 수가 없다.”
- 질의 :고용노동부 재항고 문건을 행정처가 써줬다는 게 사실인가.
- 응답 :“아니다. 김종필 전 비서관이 쓴 것이다. 임 전 차장이 작성한 문건은 날짜순으로 돼 있고 ‘(141007)재항고 이유서(전교조-Final)’이라는 문서가 존재하는 건 맞다. 이건 행정소송 전문 변호사로 일하다 청와대로 간 김 전 비서관이 작성해 검토해 달라고 한 것이다. 파이널은 로펌 용어로 최종본이라는 뜻이다. 김 전 비서관도 그렇게 진술했다.”
- 질의 :형사적으로 책임져야 할 게 없다는 건가.
- 응답 :“지방 법원 공보 비용으로 배정된 예산 3억5000만원을 카드가 아니라 현금화해 쓰고 가짜 영수증을 첨부한 부분은 허위공문서 작성 등 실정법 위반에 해당한다. 헌재 평의 내용을 누설한 건 공무상 기밀누설이 될 수도 있다. 곁가지다. 법원행정처가 판결 지시 권한, 즉 직권이 없다. 징계사유 또는 탄핵사유는 될지언정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재판 거래는 실체가 없다. 검찰이 임 전 차장 스마트폰 중 한 개를 복구해 놓고 비밀로 하고 있다. 거기 어떤 문자 메시지가 들어있느냐에 따라 폭발력이 클 수 있다.”
- 질의 :영장 핑퐁에 대한 견해는.
- 응답 :“90% 기각이라고 하는데 90%가 피의사실 없이 청구해서다. 영장은 범죄혐의사실이 어느 정도 소명이 돼야 발부한다. 범죄 혐의를 밝히기 위해 허가해 달라고 청구하면 앞뒤가 바뀐 것이다. 사법행정권 남용에 관여했다는 행정처 근무자들에 대해선 다 발부했다.”
- 질의 :검찰은 재판 거래 관련 자료가 행정처에 있다고 확신한다.
- 응답 :“원하는 게 대법원 재판 연구관실의 사건 검토 보고서 초안이다. 대법원 심리 사건의 개요, 쟁점, 리서치한 자료 등이다. 그걸 못 주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법원조직법에 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그래서 판결문만 공개한다. 대법원장이든, 대법관이든 그걸 위반하면 탄핵사유다.”
- 질의 :재판 거래가 정말 없나.
- 응답 :“법원행정처에 금기 영역이 있다. 행정처장도 대법관에게 재판에 관해선 말 못한다. 사실은 검찰이 압수한 문건들에 답이 있다. 그게 무죄의 증거다. ‘우리 행정처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여기까지다’라는 표현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강제징용 건과 관련해서도 의견서 제출 절차를 만들어 주는 규칙을 개정한 게 전부다. 검찰은 이 부분을 법관 연수의 대가라며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엮으려 한다. 특히 검찰은 이번에 법원행정처가 검토한 법조계의 모든 이슈 관련 문건을 다 확보했다. 공직비리수사처 등 현안에 대한 속내를 다 알게 됐다.”
- 질의 :사법농단 수사의 함의는 뭔가.
- 응답 :“의도가 두 가지 같다. 사법부 인적 청산과 이를 통한 판례 변경이다. 보수세력 몰아내고 진보 세력을 다수로 만들기 위해 이 문제를 부각시켰다고 본다. 앞으로 대법원의 진보와 보수가 8대 5가 될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진보가 6명이 될 때까지 이 수사를 밀고 가지 않을까. 계엄문건을 활용해 기무사를 없애고 군사안보지원사령부 만든 것과 동일한 구조다. 보수적 판결이 재판 거래의 산물이라는 프레임은 이미 심어졌다. 전원합의체에서 13대 0의 인적 구성을 만들어낸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부 9년의 패착이자 인사 후폭풍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 질의 :김명수 대법원장의 입장은 어떻게 보는가.
- 응답 :“영장 발부나 수사에는 불개입하고 제도 개선에 주력한다. 3차 특조단 결과를 수용했다가 번복하지 않았나.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사와 병행해 국회 국정조사가 진행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상 재판 계류 중인 사건은 대상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은 향후 공정한 재판을 위해 특별 법원을 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개헌 사항이다.
취재과정에서 현직 대법관이 전한 이야기다. “최근에 어떤 변호사에게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연결이 되자 사건 관련 얘기를 하길래 바로 끊고 앞으로는 어떤 변호사의 전화도 연결하지 말라고 그랬다. 하도 거래의혹, 거래의혹 하니까 거래가 되나 보다 하고 전화했나 싶더라.”
이 대법관은 우리나라도 전면 참심·배심제로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경계가 애매한 사건, 정답이 모호한 사건은 판결이 나도 누구도 승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판사는 법률 문제만 얘기하고 결정은 시민들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가 됐다는 거였다.
“검찰이 원하는 건 재판 자료다. 재판에 딜이 있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한다. 그건 없어. 몇 년을 찾아도. 빨리 은퇴하고 싶어….” 대법관의 한숨 소리가 깊었다.
조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