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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1355] 이문열의 불에 탄 집

bindol 2022. 7. 11. 04:40

[조용헌 살롱] [1355] 이문열의 불에 탄 집

입력 2022.07.11 00:00
 

갈암 이현일(1627~1704) 이후로 재령 이씨 집안에서 배출한 전국구 문사(文士)가 이문열이다. 철옹성의 노론들에게 단기필마로 나가서 정면 승부를 걸었던 인물이 갈암이다. 결과는 엄청난 고초였다. 노론들에게 명의죄인(名義罪人·죄명을 따질 것 없는 무조건 죄인)으로 찍혔다. 갈암 이후로 재령 이씨들은 약 200년 동안 과거시험을 보지 못하고 춥고 배고픈 길을 걸어야만 하였다. 그 배고픔과 고독의 한이 뭉친 동네가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이다. 이문열의 고향이자 재령 이씨의 집성촌이다.

 

두들마을은 풍수적으로 볼 때 흥미로운 지형이다. 우선 동네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아래서 볼 때는 위로 올려다보아야 하는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상을 품고 있는 터라는 인상을 풍겼다. 양반들이 수백년 동안 살았던 동네들의 풍수를 살펴보면 각기 표정이 있고 개성이 다르다. 특히 동네 언덕으로 올라가는 입구의 바위에 새겨 있는 ‘樂飢臺(낙기대)’라는 글씨도 나를 사로잡았던 기억이 있다. ‘배고픔을 낙으로 삼는 대(臺)라니. 이게 뭔 뜻이지?’ 나중에야 알았다. 갈암이 노론에게 대들었다가 그 보복으로 두들마을의 이씨들은 일체의 벼슬도 못 한 채로 200년 동안 배고픔을 견디고 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그 탄압과 고독의 한을 담담하게 견디자는 다짐이 ‘樂飢臺’라는 문구로 나타난 것 같다. 이것이 집권 여당으로부터 소외당한 채로 조선 후기를 살아야 했던 영남 남인의 정신이 아닌가 싶다.

 

이 동네에는 300년쯤 된 오래된 상수리나무가 수십 그루 살아있다. 상수리나무는 뿌리가 깊이 내려가므로 가뭄에도 열매를 맺는다. 이 상수리 열매가 굶어 죽는 흉년에 구황 식품이 된다. 상수리 열매는 동네의 배고픈 사람들이 먹는 식량이었던 것이다. 갈암의 어머니인 장 부인(‘음식디미방’ 저자) 시대에 흉년을 대비하여 심어 놓은 나무라고 한다.

 

10여 년 전쯤인 것 같다. 이문열씨 형님의 안내로 이 동네의 ‘광산문학연구소’에서 하룻밤을 잔 적이 있다. 아침 7시쯤 되었을까. 아침 식사 전에 문어를 살짝 데쳐서 빨간 초장과 함께 접시에 담아가지고 내가 자던 사랑채 방에 들여주었던 기억이 난다. 호남에는 없는 접빈객의 풍습이었다. 안동 일대에서 문어를 손님에게 대접하는 풍습은 수백년간 내려오는 식문화이다. 이문열 작가가 인세 모아 지어 놓은 그 집이 화재로 전소되었다니 안타깝다. 나도 장성 축령산 휴휴산방에 불이 나 봐서 그 심정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