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기도 모르는 진짜 영어

[채서영의 별별영어] 영어의 호칭(Address terms)

bindol 2022. 7. 23. 04:19

[채서영의 별별영어] 영어의 호칭(Address terms)

중앙선데이

입력 2022.07.23 00:24

채서영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영어에 존대법이 있을까요? 모든 언어에 정중한 표현이 있지만, 영어에는 한국어처럼 문법이 된 요소가 없고 상대를 가리키는 대명사도 ‘you’ 하나라서 그런 게 없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영어의 공식적인 존대법은 호칭에 단계를 두는 것이죠. 상대를 존중하려면 적절한 ‘타이틀(title)’을 이름 앞에 붙여요. 가장 흔한 Mr. 와 Ms.(Miss+Mrs.) 외에 Doctor, Professor 같은 직업명도 씁니다. 지역차가 있어서 영국은 귀족이 아닌 일반인도 서류에서 사용하는 타이틀이 열 가지쯤 되지만, 미국은 두어 가지뿐이죠. 영어 호칭의 단계는 넷입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면 별칭(Liz), 이름(Elizabeth), 이름과 성(Elizabeth Taylor), 타이틀과 성(Ms. Taylor)이죠.

미국에선 단계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처음에만 타이틀을 쓰고 바로 이름을 부릅니다. 영어에 존대법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건 미국인들이 지위 높은 사람, 심지어 대통령과도 사석에서는 서로 이름을 부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잘 모르는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상대에겐 호칭과 말이 다릅니다.  이웃 할머니께는 이름 대신 타이틀과 성인 ‘Mrs. Smith’라고 격식을 갖추고, 직장상사에겐 “Thanks.” 대신 "I appreciate it.”하는 식이죠.

호칭의 전환은 윗사람이 먼저 제안해야 가능합니다. 학생은 ‘Professor Labov’라고 부르고 교수가 “Call me Bill.” 하기 전에 이름을 부르면 결례예요. 사원과 사장 사이도 같은데, 서로 이름을 부른다고 지위 차이가 사라지는 건 아니어서 이를 ‘계층위장(stratification masking)’이라 합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선 직원들이 무서운 편집장을 이름 ‘Miranda’로 부르죠. 그녀는 새 비서를 다른 비서의 이름으로 불러 무안을 주는 싸늘한 성격인데 아마 쿨한 인물로 보이려고 이름을 부르게 한 것 같아요. 어느 교사는 대학에 들어간 제자들에게 이제 Mr. Griffith 대신 Tony라고 부르라고 메일을 보내더군요.

즉, 그들은 남을 평등하고 가깝게 대하는 것을 중시하는 문화입니다. 이는 상대를 높이고 나를 낮추는 것이 예의라 여기는 동양의 문화와 대조적이죠. 물론 미국인들도 높여준다고 싫어하진 않아요. 서로 이름을 부르자고 하면 “If you insist(정 그러시다면)!” 하며 따르면 되죠.

인류 문화에 보편적인 면이 많지만 지역마다 정서가 달라서 이를 이해해야 깊이 있는 소통이 가능합니다. 어디서나 좋은 관계는 상대를 적절하게 부르는 데서 시작되지요.

 

채서영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