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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불매운동과 한국

bindol 2022. 8. 29. 05:02

중국 불매운동과 한국

중앙일보

입력 2022.08.29 00:50

 
유상철 기자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구독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언제부터인가 중국에서 혼나는 외국기업이 많아졌다. 대개 불매운동을 당하곤 하는데 그 원인으론 ‘중화를 욕보였다’는 ‘루화(辱華)’가 꼽힌다. 뭐가 중화를 욕보이는 행동인가. 이와 관련해 크게 네 가지 유형이 거론된다. 1) 중국과의 관계가 틀어지거나 2) 중국이 금과옥조처럼 외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거나 3) 인권 등 가치관 문제에서 중국과 대립하거나 4) 중국인 외모를 비하했을 때다. 외국기업의 예를 들것도 없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사태로 우리 롯데가 중국에서 홍역을 치렀다.

2016년 사드 사태가 터지며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가 중국 내 불매운동의 타깃이 됐다. 사진은 중국 톈진의 롯데백화점 모습. [연합뉴스]

이 같은 중국의 외국기업 불매운동 실태와 관련해 지난달 중순 스웨덴국립중국센터(Swedish National China Center)가 눈여겨볼 만한 보고서를 발표해 눈길을 끈다. 2008년부터 2021년까지 조사 가능한 중국의 외국기업 불매운동 실태를 전수 조사해 어떤 경우 보이콧을 당하고, 불매운동에 중국당국이 어느 정도 개입했으며, 외국기업으로선 불매운동을 당할 때 어떤 대처가 효과적인지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밝혔다. 중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의 기업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국이 세계 5위에 올라있다는 조사 결과는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서 꽤 씁쓸한 느낌을 준다.
스웨덴국립중국센터는 2008년부터 2021년까지 중국의 불매운동 사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모두 91건의 불매운동 사례를 확인했다. 뭐가 원인이었나. 가장 많은 건 중국의 주권 침해였다. 모두 21건으로 대만과 홍콩, 신장 문제 등에서 하나의 중국에 저촉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외국기업이 했다는 거다. 미국의 패션 브랜드 코치가 웹사이트 등에 대만과 홍콩을 중국과 별개의 나라로 표기했다가 중국에서 불매 리스트에 오른 게 대표적인 예다. 이어 중국의 사회문화 등에 대해 편견을 보였다는 이유로(20건), 중국과 불화가 생긴 국가의 기업이기 때문에(16건), 홍콩 시위에 지지 의사를 표시했다가(13건), 신장 인권 문제에 연루돼(11건), 기타(10건) 순이었다.

2008년부터 2021년 사이 중국에서 외국기업 불매운동이 벌어진 연도별 그래프. 2016년 이후 집중적으로 많이 발생했다. [스웨덴국립중국센터 홈페이지 캡처]

이 같은 중국의 불매운동은 언제 집중적으로 터지나. 중국의 외국기업 보이콧은 전랑(戰狼)외교로 일컬어지는 중국의 공세적 외교 행보와 궤를 같이한다. 모두 91건의 사례 중 85%가 넘는 78건의 불매운동이 2016년 이후 벌어졌다. 그 이전엔 2008년과 2012년 두 개의 정치적 사건에 따른 보이콧만이 있었을 뿐이다. 2008년 서방이 중국 당국의 티베트 시위 진압을 비판했을 때, 그리고 2012년 일본과 중국 간 센카쿠(尖閣, 중국명 釣魚島)열도 영유권 분쟁이 벌어졌을 때다. 당시 서방과 일본 기업은 자국이 중국과 불화에 빠지면서 불매운동의 유탄을 맞았다.
한데 중국 외교가 거칠어지기 시작한 2016년 이후엔 6년 동안 78건, 즉 매년 13건의 외국기업 불매운동이 중국에서 벌어졌다. 매달 한 건 이상이 터진 셈이다. 특히 미·중 간 무역분쟁이 첨예해진 2019년엔 불매운동이 30건이 넘었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하면서 중국 국내적으로 애국주의를 부추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자, 그럼 어떤 나라들이 주요 타깃이 됐나. 1위는 단연 27건의 미국이 차지했다. 2위엔 각 11건의 일본과 프랑스가 올랐으며 4위는 8건의 독일이었는데 5위에 6건의 한국이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이탈리아, 대만, 스페인, 캐나다, 스웨덴, 영국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중국에서 외국기업 불매운동을 촉발시킨 사안들. 중국의 주권과 관련된 게 가장 많다. [스웨덴국립중국센터 홈페이지 캡처]

외국기업의 어떤 업종이 불매운동의 홍역을 치렀나. 조사에 따르면 업종은 식품과 주류, 자동차, 패션, 스포츠 브랜드, 화장품 등 다양했는데 중국 당국은 보이콧 대상을 정할 때 외국기업을 때림으로써 중국기업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에 따라 식품과 음료, 의류, 화장품, 자동차 분야가 중국 당국에 의해 수시로 불매운동을 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문제는 중국에서 벌어진 불매운동의 3분의 1 가까이가 중국 당국의 관여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스웨덴국립중국센터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이나 정부와 관계가 있는 단체의 지원을 받은 불매운동이 25%에 달했고, 3%는 아예 중국 공산당이나 정부가 촉발했다고 한다. 중국 소비자들이 중국 정권에 의해 움직이는 경제적인 무기가 됐다는 이야기다. 흔히 14억 거대 소비 시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중국이 외국기업들엔 ‘황금밭’에서 ‘지뢰밭’으로 변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불매운동을 당한 외국기업의 업종별 분포. 식품과 주류, 화장품 등 다양하다. [스웨덴국립중국센터 홈페이지 캡처]

불매운동이란 난감한 상황에 부닥친 외국기업으로선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 이 경우 문제가 된 발언이나 행동이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 실수에 의한 것이라 해명하고 사과와 함께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해 중국 민심 달래기에 나서는 게 최선일 것이란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조사에 따르면 공개 사과를 한 외국기업이 52%인데 반해 사과를 하지 않은 기업의 수도 48%에 달했다. 외국기업들은 불매운동을 당한 이유에 따라 사과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대만이나 홍콩을 중국과 별개의 국가처럼 표시하는 지도를 쓴 경우처럼 중국의 주권과 관련된 사항에선 대부분 사과를 했다. 그러나 신장 제품에 대한 판매 거부와 같이 인권 문제와 관련이 있을 때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는 외국기업이 중국 시장에 대해선 중국 정부의 압력을 받는 것과 같이 서방 시장에 대해선 서방 국가의 압력이라는 이중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인권 문제에서 중국의 압력에 굴복했다가는 서방 국가의 국민에게 보이콧을 당할 형편인 것이다.

지난 2019년 미중 갈등 심화 속에 중국인들의 불매운동을 맞은 코치 매장. [연합뉴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기업이 중국에 사과한다고 해서 꼭 경제적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휴고보스와 버버리는 신장 문제로 중국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게 됐을 때 휴고보스는 사과했고, 버버리는 사과 대신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결과는 둘 다 매출이 크게 줄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과했다가 더 큰 매를 맞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문제가 생겼을 때는 “중국 대중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있는 게 최선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솔직히 정답은 없는 셈이다.
이 같은 조사 결과 자체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건 지난 몇 년간 중국과 관계가 껄끄러운 상태인 스웨덴이 정부 자금으로 스웨덴국립중국센터를 출범시켜 스웨덴의 실제 이해가 걸린 문제와 관련해 정밀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웨덴국립중국센터는 2020년 설립됐고 전적으로 정부 자금에 의존하며 스웨덴의 이해가 걸린 문제에 연구를 집중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스웨덴의 의류 브랜드인 헤네스앤모리츠(H&M)가 중국에서 어떻게 불매운동을 당하고 있는지를 상세하게 밝혔다. 중국으로부터 세계 5위의 불매운동을 당하고 있는 나라인 한국은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한 백서도 없다.

2008~2021년 중국에서 불매운동 당한 외국기업이 속한 국가 그래프. [스웨덴국립중국센터 홈페이지 캡처]

롯데가 난타당할 때 국내 일각에선 “원래 롯데의 중국 사업이 잘 안 되고 있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중국에 “사드 보복을 철회하라”는 요구는 했지만, 앞으로 닥쳐올 수도 있는 제2, 제3의 사드 보복에 대해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깊은 논의도 없었던 것 같다. 중국과의 관계는 좋을 때도 있고 또 나쁠 때도 있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중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스웨덴도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데 중국과 평생 붙어살아야 하는 우리의 자세가 너무 안이한 것 같아 안타깝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 you.sangch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