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울지마, 디미

bindol 2022. 10. 4. 07:53
Opinion :삶의 향기

울지마, 디미

중앙일보

입력 2022.10.04 00:44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디미’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지우즈킨 디미트로는 우크라이나인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음악 명문가 출신인 그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입니다. 그는 서울시립합창단 상임 단원을 지낸 김문수 메조소프라노와 인사동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한국에 들어와 국립오케스트라와 서울 팝스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던 디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조국이 전쟁 상태에 빠지자 졸지에 난민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황급히 우크라이나로 들어가 어머니와 여동생을 스위스로 대피시키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서방 세계의 지원과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전황이 다소 호전되자 어머니는 수도 키이우로 귀환했다고 합니다. 살던 집이 다행히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에 펼쳐진 지옥도
조국을 탈출하는 러시아인들
시인협회, 난민 돕기 바자 열어

그가 보여주는 사진들은 언론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러시아 병사의 시신은 상반신이 아예 없었습니다. 탱크에서 탈출하려다 숨진듯한 시신은 탱크의 뚜껑에 걸쳐져 있었습니다. 이 정도로 참혹한 사진은 언론에서 아예 싣지 않거나, 잘 보이지 않게 해서 보도하지요. 사망자가 워낙 많아 시신들을 가매장 상태로 묻어둔 것을 개들이 파먹기도 한다고 합니다.

전쟁의 양상이 처참해지자 양측의 증오심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은 포로가 된 우크라이나 병사를 거세시킨 뒤 죽이는 경우도 있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습니다. 보복과 보복이 반복되는 지옥도가 우크라이나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꿈많던 젊은이들을 이렇게 상대를 증오하는 악마로 만든 것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디미는 친구의 20%가 전사했다고 밝히면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비쳤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아들이 있는 한국이 그의 삶의 터전입니다. 최근 코로나19 상황이 다소 진정세를 보이자 폴란드를 여행하고 돌아온 한 지인으로부터 아름다운 우크라이나 여성들과 어린이들이 거리를 방황하고 있더라는 참상을 전해 듣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이 거셉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 때 러시아와 벨라루스 그리고 미얀마를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천연가스의 대부분을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던 유럽 국가들은 겨울을 앞두고 원자력발전 재가동 등 다른 공급 루트를 찾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우리에게 아픈 기억을 소환합니다. 대륙 국가인 우크라이나인들은 그래도 이웃 나라로 피난이라도 가능하지만 70년 전 한국인들은 육로로 피신할 수 있는 이웃도 없었습니다. 만약에 부산마저 무너졌다면 바다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절박했던 시기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우리를 건져주었던 우방들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의외로 강경해 일부 피점령 지역을 수복하기에 이르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마침내 예비군 동원령을 내렸습니다. 그만큼 전황이 급박하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이에 항의하다 끌려가는 모스크바 시민의 모습이 처절합니다. 징집을 피해 해외로 탈출하려는 행렬도 줄을 잇고 있습니다. 러시아인이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조지아 국경 검문소의 차량 대기 행렬이 5㎞에 달했으며, 모스크바에서 두바이로 가는 가장 싼 비행기표 가격이 30만 루블(718만원)까지 치솟았다고 합니다. 이런 해외 탈출 러시아인이 수십만 명에 이른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습니다. 푸틴은 법을 고치며 징집 기피자는 엄벌에 처하겠다고 위협합니다. 점령지에 대한 주민 동의 투표를 사실상 공개 상태로 치르곤 징집하겠다 하니 우크라이나인들끼리 싸우는 상황으로 몰리게 생겼습니다. 헤어날 길 없는 죽음과 공포의 수렁으로 양국 국민들은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은 경제에 나타났습니다. 세계 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허덕입니다.

푸틴은 과연 우크라이나에 핵무기 공격을 할까요? 만일 그런다면 서방 세계는 핵으로 러시아를 응징할 수 있을까요? 3차 세계대전의 불길한 전조마저 어른거립니다. 한 사람의 야망이 세계를 전쟁의 불길에 휩싸이게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그러하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등지에서 난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난민들은 국제 사회의 큰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한국시인협회는 국내외 난민들을 돕기 위한 바자를 10월 15일(토), 16일(일) 양일간 서울 남산 문학의 집에서 엽니다. 이 바자에는 시인들뿐 아니라 각계각층의 인사들도 참여합니다. 기증된 물품들을 판매한 수익금은 유엔난민기구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울지마, 디미. 넌 혼자가 아냐.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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