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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윤 칼럼] 지금은 비상상황이다

bindol 2022. 10. 4. 08:03

힘이나 다수결은 마지막 수단이요, 대안이다
 

국제질서의 경향은 ‘블록화’요,  국내 상황은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복합 불황' 으로 에너지값 폭등에 수입액 ‘눈덩이’처럼 불어나 1997년 이후 첫 6개월 연속 적자로 연간 무역적자 480억달러가 예상되는 비상상황이다. ‘경제에 비상등’이 깜빡이고 있다.

하지만 여야는 이러한 비상 상황이 도래하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정쟁만 일삼고 있다. 이를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도산 안창호 선생은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나와 다른 의견을 용납하는 아량이 없고 오직 저만이 옳다고 하므로 그 혹독한 당쟁이 생긴 것이다. 나도 잘못할 수 있는 동시에 남도 옳을 수 있는 것이거든 내 뜻과 같지 않다고 해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 하여 멸족까지 하고야 마는 것이 소위 사화요 당쟁이었으니 이 악습은 아직도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사상의 자유는 존중하되 우정과 존경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 무릇 문명 국민으로서의 덕목일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 천만 가지의 의견이 대립하더라도 오히려 우정과 민족적 우애만은 하나일 수 있으니 사상의 대립 또한 서로 연마 발달하는 자극이 될 수 있고, 서로의 존경과 애정은 민족통일을 묶는 실이 되어 안으로는 이런저런 의견 대립이 있다 하더라도 전 민족의 운명이 달린 일에 대해서는 혼연히 하나가 되어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어록에 나온 말이다.

조선시대에 유교 중에서도 주자학 즉 성리학의 해석을 벗어난 학설을 펴는 사람을 비방할 때 주로 사문난적이라는 말을 앞세워 반대파를 숙청하곤 하였다. 원래는 사문난적이라는 사자성어는 고대 중국에서 사이비 학문으로 궤변을 펼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조선 중기 사림이 정계를 장악한 명종 후반 이후 정적의 제거를 위해 많이 사용되었다. 아니 지금도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지 않은지 여·야 지도자에게 묻고 싶다.

그 대표적인 사문난적 사건으로는 주자학의 절대성을 부정한 윤휴가 사문난적으로 비난을 받았는가 하면 남인의 영수이자 송시열의 정적인 허목 역시 주자학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학문도 진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쳐 사문난적으로 몰렸다. 또한 송시열을 비난했던 윤선도가 사문난적으로 몰려서 매장당한 일도 있다. 서계 박세당 역시 학자적 양심을 바탕으로 『사변록』을 통해 기존의 성리학을 비판하다가 사문난적으로 몰렸다. 

유학이 조선의 체제 정비의 근본 사상으로서 체제를 안정시킨 긍정적인 부분이 있었는가 하면 너무 극단적인 사상이 되어 상대방을 공격하고 때로는 죽이기까지 하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이러한 폐단은 근세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수 있음을 예견하여 이를 벗어나야 함을 도산은 지적하였다. 하지만 도산이 서거한 지 84년이 되었건만 그의 당부는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어 우리의 머릿속만을 맴돌 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이 넘도록 장관 2명을 임명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국회에서 이 00들이 승인 안 해주O OOOO 쪽팔려서 어떡하나? 가 2주가 넘도록 여야 정쟁의 한 중심에 있지 않는가? 이 사실 자체가 한국 정치의 현주소요, 비극이지 않는가?  

말을 그럴듯하게 잘 꾸미는 교언인(巧言人)이나 얼굴빛을 잘 꾸며서 남에 비위를 잘 맞추는 영색인(令色人)은 많다. 하지만 양심과 덕망을 갖춘 인재는 찾기가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정치권에 매우 흔한 인물은 온갖 옳지 못한 수단과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정치 모리배요, 양아치들이다. 이들이 설치다 보니 양심과 덕망을 갖춘 사람은 이들과 무리가 되는 것을 극구 피하고 있다. 그것이 인재 고갈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일이다. 이들을 청산해 달라는 것이 정권교체요, 국민의 요구가 아니던가?

집을 잘 지으려면 좋은 재목이 있어야 한다. 국내에 좋은 재목이 없다면 외국에서 수입하면 된다. 하지만 바른 나라를 세우려면 좋은 인재가 필요하다. 내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하면서 인재를 외국에서 사 올 수도 없는 일이다.

 세월이 걸리고 힘이 들더라도 우리 손으로 국내에서 기르고 양성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도덕교육, 덕성교육부터 강화하면서 인격교육도 병행해야 한다. 그것이 원칙 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나라의 지도자는 정직해야 하고 성실해야 한다. 거짓말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진실을 입에 달고 사는 지도자여야 한다. 상대 진영이나 정파를 증오하고 미워하기보다 우정과 존경을 바탕으로 국정을 논해야 한다. 나라를 경영하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 그 논쟁은 말과 논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힘이나 다수결은 마지막 수단이요, 대안이다. 그것이 도산 안창호 선생이 살아생전 우리에게 당부한 말이다. 좌우의 정파에 상관없이 무엇이든 진보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상태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의 위정자들은 과거의 오류나 모순을 성찰하고 솔선해서 과거의 진부함을 뛰어넘어야 할 것이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당부를 미래를 여는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