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6521> 다시 보는 경회루

bindol 2022. 10. 10. 08:44

성종 때 유구(琉球) 국왕 사신이 조선의 3대 장관 가운데 하나로 경복궁 경회루의 못에 떠다니는 용 그림자를 들었다. 48개 우람한 돌기둥에 종횡으로 새겨진 용 그림자가 둘레 못의 푸른 물결과 붉은 연꽃 사이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헤엄쳐 다니는 것이 별천지 같다 했다. 중국 사대(事大)에 저항하는 주체이념이 남달랐던 태종 때 지은 다락인지라, 천자의 상징인 용을 부각시킨 데 저의가 깔린 이념건물이랄 수 있다. 용을 탄다는 기용루(騎龍樓)로 이름을 삼자는 주장도 있었다 하니 그 저의를 가늠할 수 있겠다. 6년 전 이 못을 준설할 때 구리로 만든 용이 출토되었는데, 대원군이 중건할 때 화재 예방의 도참으로 풀이했었다. 하지만 그 용이 사대(事大)국의 싱징인 네 발톱의 사조룡(四爪龍)이 아니라 중국 천자의 상징이요 독점물인 다섯 발톱의 오조룡(五爪龍)인 점으로 미루어 태종 때 반(反)사대의 도참 용일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경회루의 터전에 이미 태조가 지은 다락집이 있었던 것을 크게 확충한 것으로 그 다락집의 내력이 환상적이다. 태조는 계비 강씨를 무척 사랑하여 사후에도 지금 광화문 정동(貞洞)에 능을 쓰고 궁에 다락집을 지어 이곳에 올라 능을 바라보고 유명(幽明) 간의 정을 다졌던 사랑의 집이었다.

성종이 어느 날 저녁 이 다락에 올라 남산 기슭에 둬 사람 어울려 있는 것을 보고, 분명히 퇴청 후의 손순효(孫舜孝) 대감일 것이라 하고 내시를 보내어 확인시켰다. 손 대감이 술단지 안고 바가지로 술을 마시는데 안주라고는 오이장아찌 둬 쪽뿐이라 하자 그 청렴을 치하, 술상을 내리고 그 때문에 감사입궐하지 말라고 분부했다. 수채화 같은 군신 간의 정이 서린 경회루이기도 하다. 태종의 척신인 하륜(河崙)이 쓴 기문 가운데 경회(慶會)란 임금과 신하가 덕(德)으로써 만나는 다락이라는 뜻풀이를 했다. 동색의 코드가 맞는 사람끼리 추종하는 장이 아닌, 주장이 다르더라도 덕으로 상생하는 장이라는 뜻인 것이다. 주체가 숨쉬고 사랑의 접점이며 인정이 훈김을 내고 갈등이 상생하는 오늘에 바라는 모든 것을 안고서 40년 만에 이 다락이 개방된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