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75세 안네 프랑크
금주는 안네 프랑크가 75세 되는 주간으로 전 세계 유대인 단체와 교회, 학살 관련 기관과 단체들에서 전시회와 일기 낭독회, 연극을 상연하는 등 기념행사가 한창이다.
안네가 25개월 숨어 지내던 방에 들른 적이 있는데 안네 자매가 키를 견주던 눈금이 벽에 있고, 침대머리에 배우의 사진들이 안네가 붙인 채로 있는 바로 그 방에서 안네의 미공개 사진들을 전시 중이다.
아마추어 사진가인 안네의 아버지가 찍어 처음으로 공개한 사진들로, 살았으면 75세 할머니가 됐을 그 세월을 압축하는 데 울먹임 없이 불가능하다는 관람객의 말이 인상적이다.
안네가 숨어 살았던 곳, 네덜란드의 전쟁자료관은 ‘안네의 일기’ 가운데 출판 직전에 아버지가 손질했다는 삭제부분도 공개했다. 이를 테면 화장실에 들어가 국부를 관찰하는 장면이며, “그것이 자꾸만 커져가는 느낌이 드는데 그렇게 상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대목 등 성(性)에 대한 관심과 부모에의 반발, 여성의 지위에 대한 주장 등 아버지로서의 도덕적 손질들이며 이로써 ‘청순한 안네’ 이미지가 부각됐던 것이다.
안네가 언니 마르고트와 함께 잡혀가 베르겐 수용소에서 죽어간 것은 15세 되던 해 봄이었다. 안네는 장티푸스로 죽어간 언니의 손을 잡고 놓질 않았다. 아무도 그 손을 떼려고 하지도 않았고 뗄 수도 없었다고 같이 수용됐던 마리온은 회고했다.
그 후로 발랄했던 안네는 삶에 희망을 잃더니 그 길로 한 달이 채 못 되어 따라 죽었다. 물 것을 피하여 안네는 알몸을 담요로 둘러싸고 다니면서 “나의 희망까지 뜯어먹어 보라지” 하고 중얼거렸다고도 회고했다.
“그 작은 희망을 인류의 그 거대한 역사는 구제하지 못했다”는 버트런드 러셀의 지탄이 새삼스럽다. 안네의 일기 가운데 이런 대목이 생각난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루어질 티끌만한 가망도 없는 바보스럽기만 한 희망들이 저버려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기만 하다.” 그렇게 작은 손으로 악착같이 붙들고 늘어진 그 환멸을 등지고, 지팡이 짚고 황야를 걸어가는 75세의 허리 굽은 할머니 안네의 모습에 초점이 잡혀지지가 않는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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