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남원 판소리 대학

bindol 2022. 10. 24. 05:24

[이규태코너] 남원 판소리 대학

조선일보
입력 2004.03.08 17:26
 
 
 
 

풍토학에서 푸른 산에 싸여 살아온 청산형(靑山型) 인간과 사막에 싸여 살아온 비청산형(非靑山型) 인간을 구분하고, 다시 청산형 인간을 지질이 노쇠하여 바위가 들쑥날쑥 드러난 골산형(骨山型) 인간과 기름진 흙으로 뒤덮인 육산형(肉山型) 인간으로 갈라본다.

곧 비청산형이나 골산형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종적(縱的)으로 성장시키는 권력지향을 하는 성향이 있는데, 청산형·육산형 인간은 인생을 횡적(橫的)으로 풍요하고 살찌게 하려는 예능지향을 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육산이 지리산임은 알려져 있으며 그 청산의 기를 아끼기라도 하듯 감싸 지리산 남쪽으로 펼쳐진 땅이 남원평야다. 조선조의 문헌들에 팔도에서 단위면적당 소출이 가장 많은 옥답이 바로 이 지리산 자락이며 그 자락 복판을 기름지게 굽이쳐 흘러내린 것이 섬진강이다.

남원은 청산문화를 꽃피운 예향의 수읍으로 유독 이곳에서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민중의 종합 예술 판소리가 기생하여 명맥을 유지한 풍토학적 자의가 알 만해진다.

이미 200여년 전 장안에 우춘대(禹春大)라는 소리꾼이 있어 한곡조에 1000단(隱)의 비단이 쌓일 만큼 명성을 얻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으나 판소리의 고향도 남원이요, 성장한 곳도 남원이다. 판소리 소재인 춘향가 흥부가 변강쇠가의 배경이 이 남원 청산문화권에 있고 판소리 사설들이 이 남원 사투리이며 남원 사투리 아니고는 제맛이 나지 않는 이유가 이에 있다.

남원골을 꼭두로 섬진강 오른쪽으로 따라 흐른 노래의 맥이 우편제요 왼편으로 흐른 맥이 좌편제며, 판소리 중흥의 중시조 송흥록이 이 청산문화권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판소리 인구의 80%가 전라도 곧 남원문화권과 어떤 형태로든지 연관을 짓고 있다고 들었다.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각광받게 된 데는 그 문화적 가치 말고 인생을 풍요하게 살고 싶은 존재가치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흐름에 호응, 판소리의 지정학적 발생지이기도 한 남원에 판소리 대학을 세우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한다. 남원이 연고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판소리의 세계 중심이라는 원대한 조감도의 일환으로 추진해 나갔으면 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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