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남원 판소리 대학
풍토학에서 푸른 산에 싸여 살아온 청산형(靑山型) 인간과 사막에 싸여 살아온 비청산형(非靑山型) 인간을 구분하고, 다시 청산형 인간을 지질이 노쇠하여 바위가 들쑥날쑥 드러난 골산형(骨山型) 인간과 기름진 흙으로 뒤덮인 육산형(肉山型) 인간으로 갈라본다.
곧 비청산형이나 골산형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종적(縱的)으로 성장시키는 권력지향을 하는 성향이 있는데, 청산형·육산형 인간은 인생을 횡적(橫的)으로 풍요하고 살찌게 하려는 예능지향을 한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육산이 지리산임은 알려져 있으며 그 청산의 기를 아끼기라도 하듯 감싸 지리산 남쪽으로 펼쳐진 땅이 남원평야다. 조선조의 문헌들에 팔도에서 단위면적당 소출이 가장 많은 옥답이 바로 이 지리산 자락이며 그 자락 복판을 기름지게 굽이쳐 흘러내린 것이 섬진강이다.
남원은 청산문화를 꽃피운 예향의 수읍으로 유독 이곳에서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민중의 종합 예술 판소리가 기생하여 명맥을 유지한 풍토학적 자의가 알 만해진다.
이미 200여년 전 장안에 우춘대(禹春大)라는 소리꾼이 있어 한곡조에 1000단(隱)의 비단이 쌓일 만큼 명성을 얻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으나 판소리의 고향도 남원이요, 성장한 곳도 남원이다. 판소리 소재인 춘향가 흥부가 변강쇠가의 배경이 이 남원 청산문화권에 있고 판소리 사설들이 이 남원 사투리이며 남원 사투리 아니고는 제맛이 나지 않는 이유가 이에 있다.
남원골을 꼭두로 섬진강 오른쪽으로 따라 흐른 노래의 맥이 우편제요 왼편으로 흐른 맥이 좌편제며, 판소리 중흥의 중시조 송흥록이 이 청산문화권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판소리 인구의 80%가 전라도 곧 남원문화권과 어떤 형태로든지 연관을 짓고 있다고 들었다.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각광받게 된 데는 그 문화적 가치 말고 인생을 풍요하게 살고 싶은 존재가치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흐름에 호응, 판소리의 지정학적 발생지이기도 한 남원에 판소리 대학을 세우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한다. 남원이 연고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판소리의 세계 중심이라는 원대한 조감도의 일환으로 추진해 나갔으면 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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