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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황색 점퍼

bindol 2022. 10. 25. 06:06

[이규태코너] 황색 점퍼

조선일보
입력 2004.01.30 16:05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溥儀)의 자서전 한 대목을 본다. ‘내가 거처하는 황궁의 기왓장이 노랗고 식탁에 오르는 식기는 과일 깎는 칼에 이르기까지 노랗다.

의자도 쿠션도 노랗고 타고 다니는 가마도 노랗다. 입은 옷도 모자도 허리에 두르는 띠마저도 노라며 공부하는 책갈피마저 노란ㅡ나는 황색 감옥에 갇힌 수인(囚人)이다’했다. 천당의 문지기인 베드로의 외투도 노랑이며 그의 후예인 교황들의 복색도 노랗다.

이처럼 황색은 권좌의 최상을 상장하는 귀색인 데 동서가 다르지 않다. 지금 여당이 젊은 집행부를 구성하고 황색 점퍼를 제복처럼 입고 다니며 정가와 시정과 외국까지 황색바람을 일구고 있다.

황색 점퍼를 선택한 것은 닥쳐오는 선거에서 최고 권좌를 차지한다는 의욕의 나타냄일까. 귀색(貴色)이기만 하지 않고 천색(賤色)이기도 한 황색이다. 많은 색 가운데 가장 눈에 잘 띄는 확장색(擴張色)인지라 로마에서는 창녀를 구별시키고자 노란 베일을 쓰고 다니게 했고 일정액 이상의 빚을 진 신용불량자에게는 노란 목도리를, 이단자에게는 노란 십자가를 들고 다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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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에게 못질한 유태인에게 같은 복장을 입게 할 수 없다 하여 가슴에 여섯모꼴 별모양의 노란 표지를 하고 다니게도 했다. 천박한 포르노 서적을 옐로북이라 하고 인색한 사람을 노랑이라고 얕본다. 축구경기에서 범칙을 한 선수에게 경고의 뜻으로 내보이는 옐로 카드는 유럽사회에서 기피인간이나 퇴출인간들의 표시로 써왔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황색 점퍼의 저의가 뭘까. 필리핀 선거에서 핍박받았던 아키노 열풍을 주도한 것이 황색깃발이요, 1997년 김대중의 선거열풍을 주도했던 것도 황색물결이었다. 김대중의 일생을 상징하는 인동초(忍冬草)의 꽃이 노랗다 하여 싱징색으로 심았다는 설도 있었다.

눈에 잘 띄는 확장색인 데다 유권자의 기억 속에 잠재돼 있는 김대중의 지지여세를 얻고자 한 복색일 것이나 민주당에서 사용중지가처분을 신청할 것이라는 등 반발하고 있어 희귀한 선거색 소송을 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