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상피(相避)제도
동대문 밖에 우산각골이라는 지명이 있다. 조선조 초 정승 유관(柳寬)이 이 마을에서 살았을 때 일이다.
어느 비가 몹시 오는 날, 방안에 비가 새는지라 유 정승은 우산을 펴고 처자식을 우산 밑으로 끌어들이며 ‘우산 없는 집은 오늘 같은 날 어떻게 지내나’고 걱정했던 데서 얻은 우산각골이다.
우의정이던 유관의 본이름은 관(寬)이 아니라 관(觀)이었다. 그의 아들인 유계문(柳季聞)이 경기 관찰사로 배임받자 완강히 부임을 거부했다. 이유는 관찰사(觀察使)라는 관직명에 아버지 이름이 들어있으니 혈족끼리는 연관 부서에 부임해서는 안 된다는 상피(相避)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조 초기까지 친족 외족 처족 4촌까지는 상하 연관부서의 벼슬을 기피해야 한다는 제도가 있었으며, 유계문의 경우는 상피에 걸리지 않는데도 관직명에 아버지 이름이 들었다 하여 부임을 거부한 것은 고식적이었다 할 수도 있으나 조상들의 벼슬을 둔 부패고리에 의연한 의지를 엿보게 하는 고사가 아닐 수 없다.
정권에 야심을 품고 있던 수양대군이 집현전 학사들로 하여금 ‘역대병요(歷代兵要)’라는 병서를 편찬시키는 우두머리로 있을 때 일이다. 편찬에 공이 있는 학자들에게 상을 내리고 벼슬을 올려주자 후에 사육신 가운데 한 분이 되는 하위지(河緯地)는 이를 거부하고 낙향해 버렸다.
임금의 지친으로서 상을 주고 거두는 자리에 있는 것부터 상피정신에 위배되는 일이요 그로써 세력과 권력을 부식시키려는 의도가 드러난 때문이다.
옛날 벼슬아치가 집무하는 동헌(東軒) 한쪽 구석에는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한 허물어진 담이 있게 마련이다. 홀몸으로 임지에 가 벼슬살이하게 마련인 수령에게 일가친척 친지가 찾아오게 마련이요, 이 연줄로 인한 방문은 동헌의 정문을 통해 들어올 수 없게 돼 있었다.
변칙적으로 담을 헐고 들게 하였고, 이를 파장문(破墻門)이라 했다. 성문화된 것은 아니지만 옛 조상들의 부정 부패를 둔 연결고리의 사전 단절을 위한 의지를 감지할 수 있게 한다.
정부 관계 당국에서는 중하위 공무원들의 출신 지역 근무를 못하게 하는 등 향피제(鄕避制)를 비롯한 상피정신을 담는 제도적 그릇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있었다. 혈연·지연·학연 말고 재연(財緣)까지 판치고 있는 판이라 탁상공론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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