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수출 문화재
판소리의 ‘판’은 씨름판, 굿판 하듯이 사람이 모여 벌이는 행위요, ‘소리’는 입으로 하는 종합예술이란 뜻이다.
노래가 서정(抒情)을 읊는다면 소리는 문학적 내용의 서사(敍事)를 읊는다. 자연의 소리며 갖은 악기의 소리까지 입으로 내며 많은 배역을 한 사람이 하는 원맨 오페라로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단순화된 종합예술인 셈이다.
역사는 강자와 약자, 악과 선의 대결구도로 꾸려져 왔다. 관권에 억눌린 민권, 양반에 억눌린 상민, 있는 자에 억눌린 없는 자, 가부장에 억눌린 부녀자, 삼강오륜에 억눌린 휴머니즘 등등 강약선악 대결에서 억눌린 편에 들어 해학과 용기와 자위를 주는 무저항 대결수단이 판소리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불만의 풍선에 바람구멍을 내온 사회안정제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심정을 종단(縱斷)해보면 마치 시루떡처럼 중층(重層)구조를 하고 있다. 과학적 유교적 불교적 사고층으로 겪어내리다 맨 아래 억눌려 있는 신바람층을 유발하는 수단이 판소리다.
명창 한인호가 순종 어전에서 소리를 하다가 신바람에 겨워 임금의 무릎 위에 굴러떨어져 목을 내밀고 대죄(待罪)했던 일은 알려져 있다. 신바람 앞에 임금의 권위도 묵사발이 되게 하는 판소리다. 명창 이날치(李捺致)가 재상 앞에 불려가 자신을 울리면 천금을 내리고 못 울리면 목을 내놓기로 하고 심청이 팔려가는 이별대목을 불렀다.
천민이나 울리는 속물로 깔보았던 이 재상, 뒤란으로 돌아가 꺼이꺼이 울고 말았다. 서양의 성악에는 테너 소프라노처럼 목청에 한계를 두지만 판소리는 상중하(上中下)청과 우조(羽調) 계면조(界面調)를 자재로 오르내릴 수 있게끔 득음을 하고 도돔(동작)과 아니리(대화)로 청중 속에 빨려들어야 하는 다역(多役) 대행에 상황 가변의 전세계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흥행재(財)다.
한 나라를 세계적으로 인식을 높이는 데는 생산제품을 세계 장터에 내어 파는 것과 고유한 체취가 물신한 문화상품을 세계 문화장터에 내어 돌리는 일이다. 이 두 바퀴가 잘 굴러야 국제화 사회에 한국의 지위가 안정이 되는데 그 한 바퀴에 바람이 빠져 구르지 못해 오더니 드디어 판소리의 진가를 알아보고 인류의 보존 유산으로 지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바람 빠진 문화바퀴에 빵빵하게 채울 바람이 생긴 셈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