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어머니의 성(姓)
성(姓)자를 풀어보면 「女+生」으로 돼 있다. 태어난 어머니의 핏줄이 성이다. 난혼시대에는 낳아준 어머니는 알지만 낳게 해준 아버지는 모른다. 그래서 낳아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고대 주(周)나라의 후예가 강(姜)씨요, 은(殷)나라의 후예가 사씨이며, 순(舜)나라의 후예가 위씨였고 중국 상고시대의 8대성(姓) 모두가 계집녀(女) 변임은 아버지를 모르고 어머니만 아는 모계사회의 흔적인 것이다.
모권에 대한 부권의 쿠데타로 부계(父系)의 성이 자리바꿈을 했지만 관용 많은 우리 조상들만은 여느 다른 문화권과는 달리 시집 간 후에도 여자의 성을 살려두는 아량을 베푼 것이다. 성의 역사는 세계적으로 중국 다음으로 우리나라가 길다. 이미 삼한(三韓)시대의 끝무렵부터 성이 등장하고 있는 데 비해 이탈리아에는 9세기, 영국과 러시아는 11세기경, 게르만 국가들에서는 13세기에 성이 정착하고 있다. 그나마도 상류사회의 일이요, 서민에게 성이 보편화한 것은 세례명을 교회에 등록하기 시작한 18세기부터의 일이다. 이웃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때만 해도 성이 없는 사람이 95%나 됐고, 터키·이란·아프가니스탄 등에서는 1935년 전후에야 창씨성명을 했다.
고대 로마 사람들의 이름들은 꽤나 긴데, 부계의 성과 조상에게 주어진 명예들을 나열했을 뿐 모계는 도외시했다. 모계의 성을 성명에 넣는 나라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화가 파블로 루이즈 피카소의 부계 성은 루이즈요, 모계 성은 피카소다.
미국 여권운동의 알맹이 가운데 하나가 결혼 후에도 자신의 본성을 유지하려는 운동이다. 미국에서 메리 스미스가 요한 피터슨에게 시집 가면 스미스란 성은 증발하고 메리 피터슨이 된다. 성뿐만 아니라 미시즈 피터슨으로 이름마저도 상실하는 것이 관행이다. 일본에서도 결혼하면 남편 성에 수렴돼 사라져 버리는 여자의 성을 찾는 사회운동이 기승하고 있다.
여자의 성을 두고 선진적인 한국에서 이번에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돼 있는 유사 이래의 호주법을 고쳐 종모법(從母法)을 확대, 어머니 성도 선택할 수 있게끔 입법하여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국회 통과에는 험한 산이 가로놓여 있긴 하지만 선진 행보가 다시 한번 돋보이는 어머니의 성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규태코너] 위해(威海) 코리어 타운 (0) | 2022.10.29 |
|---|---|
| [이규태코너] 세계최대 와불(臥佛) (0) | 2022.10.29 |
| [이규태코너] 이팝나무 (0) | 2022.10.29 |
| [이규태코너] 곤륜노(崑崙奴) (0) | 2022.10.29 |
| [이규태코너] 러시아 코리츠함 (0) | 2022.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