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만물상] ‘과밀’에 익숙한 사회

bindol 2022. 11. 8. 05:31

[만물상] ‘과밀’에 익숙한 사회

 

입력 2022.11.03 03:18
 
 
 
 
 

1970년대 서울에서 등굣길 만원 버스를 몰던 운전기사들에겐 특유의 기법이 있었다. 이른바 ‘욱여넣기 회전’이다. 버스 중간에만 출입구가 있고, 스무 살 남짓한 젊은 여성이 버스 차장을 할 때 얘기다. 버스 차장이 출입구 손잡이를 잡은 채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출발시키면 기사는 안쪽 차선으로 들어가 20~30m쯤 가다가 갑자기 핸들을 오른쪽으로 홱 돌려버린다. 그러면 출입구 쪽에 몰려 있던 승객들이 버스 안쪽으로 쑥 들어가게 되고, 공간을 확보한 버스 차장은 그제야 문을 닫는다. 아침 등굣길 일상이었다.

/일러스트=박상훈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 지하철엔 ‘푸시맨’이 있었다. 만원 전철 문이 닫히도록 승객을 힘으로 밀어 넣는 아르바이트였다. 요즘 같으면 성추행 시비도 벌어졌을 법한데 그때만 해도 제법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였다. 10년 전 한 방송 퀴즈 프로그램 문제로도 나왔다. 안전사고 문제가 제기되면서 푸시맨은 사라지고 2008년엔 무리한 탑승 시도를 막는 ‘커트맨’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래도 과밀에 따른 안전 문제는 여전하다. 혼잡한 서울 지하철 출퇴근길은 늘 아슬아슬하다.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울 때가 많은데도 일부 승객은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몸을 욱여넣는다. 지난해 혼잡도가 가장 높았던 9호선이 대표적이다. 전동차 한 칸 표준 탑승 인원은 160명인데, 지난해 출근길 9호선 일부 구간의 열차 한 칸엔 약 300명이 타고 있었다. 서울과 수도권을 잇는 광역 버스도 전쟁터를 방불케 할 때가 많다. 과밀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밀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1968년 동물 행동학자 존 캘훈은 과밀의 결말에 대한 실험을 했다. 가로세로 2.7m 공간에 쥐들이 잘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다. 빠르게 번식하던 쥐들은 개체 수가 2200마리로 정점에 이르자 더 이상 새끼를 낳지 않았다. 과밀로 생긴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분석됐다. 번식이 멈추면서 개체당 공간이 늘었지만 개체 수는 다시 늘지 않았다. 실험은 몇 년 뒤 마지막 남은 쥐가 죽으면서 끝났다.

▶이태원 참사 후 과밀 공포를 느낀다는 말들이 나온다. 인구 950만명인 서울의 인구밀도는 1㎢당 1만5699명으로 부산의 4배에 가깝다. 과밀이 일상이었는데 위험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어느 재난 전문가는 이태원 참사 원인으로 시민들이 과밀에 익숙하다는 점을 꼽았다. “그래서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과밀의 위험을 너무 안일하게 넘긴 대가를 우리는 지금 치르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