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和而不同

bindol 2022. 11. 9. 08:35

[이규태 코너] 和而不同

 

조선일보
입력 2003.03.10 20:14
 
 
 
 

아프리카 밀림왕 사자에게 밀림의 약자 얼룩말 무리가 찾아가 담판을
청했다. 맹수들에게 쫓기고 잡혀 먹히기만 하니 살길이 없다 하고
정기적으로 살신성인(殺身成仁) 먹이를 대겠으니 왕자의 영역 안에서
먹고 살게 해주십사 했다. 사자는 얼룩말 한 마리 잡아먹으면 내장의
풍부하고 다양한 영양으로 사나흘은 먹지 않고 졸고만 있어도 되고
사냥하는 번거로움 없어도 되니 잘되었다고 응낙했고, 얼룩말은 사자의
영역 안에 있으면 다른 맹수들에게 침범당하지 않고 유유자적(悠悠自適)
먹고살 수 있으니 호혜(互惠)조건이 성립된 셈이다. 아프리카 야생공원에
가면 얼룩말이 유유자적하고 있는 주변에는 사자가 있게 마련이며 사자와
얼룩말을 격리시키지 않고 위험 앞에 노출시킨 것을 비난하는 관광객도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강자·약자 공존의 지혜, 상반된 이해의 절충,
각기 다른 의견의 조화라는 자연의 섭리를 이에서 볼 수 있다. 이를
양극단으로 상반하는 O·X 사고가 아닌 △형 사고라 하며 이 같은
절충조화의 지혜를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한다. 곧 나와 다른 남이나
다른 의견에 뇌동(雷同)하지 않고 협화(協和)하는 것으로 '논어'에서
자로(子路)편에 나오는 공자(孔子)가 한 말 "군자는 서로 같지 않되 화(和)하며 소인은 서로
같으면서 불화(不和)한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시인 소동파(蘇東坡)는 화동론(和同論)에서 "동(同)은 물에 물탄
것 같고 화(和)는 국맛을 맞추는 것과 같다"했으며 유성용(柳成龍)은
"남의 신하로서 습성은 화(和)하는 것이 좋다. 사람마다 동(同)하는
것을 숭상한다면 천하는 위태로워질 것이 뻔하다" 했다. 에디슨 최초의
발명품은 의회의 좌석에서 버튼만 누르면 되는 전기투표기였지만
미국의회에서는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다수나 강세 의견이 소수나 약세
의견의 수렴을 묵살하는 수단이 되어 화이부동을 해친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노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현안을 둔 토론은 전례 없는 일로 신선하다는
시각과 이런 식으로 국사를 처리해 나가는 데 부정적인 시각이 없지
않았으나 화이부동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소신을
일관시켰고 평검사들은 자신들의 뜻을 전달하고 대통령의 의사를
확인하는것으로 만족한다는 견해를 발표했다. 뇌동은 없어 다행이나
부동이 화(和)에 이르지는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