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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인터넷 符籍

bindol 2022. 11. 18. 07:41

 

조선일보
입력 2002.10.18 19:53
 
 
 
 


최첨단 과학 수단인 인터넷과 최후진 미신 수단인 부적이 야합하여 판을
치고 있다. 대학 수능시험을 앞두고 인터넷에서 수험생의 사주에 부합한
백금 도금의 급제 부적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한다. 소원 같은 인간의
마음을 과학이 다스리기에는 아직도 요원함을 말해 주는 문명현상이 아닐
수 없다.

출셋길이 급제라는 좁은 문으로 틔었던 조선조 사회인지라 급제 미신도
다양했다. 옛날 비석의 서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문(文) 무(武) 공(孔)
맹(孟) 자(子) 급(及) 제(第) 인(仁) 의(義) 예(禮) 지(智) 같은 좋은
한자는 파여나가 찾아볼 수가 없다. 과거 치르는 서생들이 이 같은
한자를 파 가루를 내 마시면 급제한다는 미신으로 인한 문화재
훼손이었다. 공자를 모시는 문묘의 뜰 흙이나 출세한 고관대작 문인
학자의 집 뜰 흙을 훔쳐다가 자기 집 아궁이에 바르면 그 기운이 옮아
급제한다는 '복 도둑'도 그것이다. 성종(成宗)이 미복으로 민심을
살피고 다니는데 야밤에 한 노선비가 벌거벗고 까치집을 남쪽 나무에
옮기는 것을 보았다. 연유를 물으니 남작소(南鵲巢) 곧 까치가 집 남쪽
나무에다 깃을 드리우면 급제한다 하여 아홉 번이나 낙방한 한을 풀고자
옮기고 있다 했다.

영남에서 상경하는 길의 충주 연풍간에 돌아가는 삼각지 아닌 돌아가는
바윗고개에 있는 큰 바위에 돌을 던져 얹히면 급제한다는 미신으로 던진
돌멩이가 적석총(積石塚)을 이루었었다 한다. 과거 길 떠나는 서생에게
잘 들러붙는 찰떡과 엿을 싸 허리춤에 매어 주는 것은 요즈음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고 시험 치러 가는 자녀에게 미끄러지는 것을
유감(類感)하는 미역국 끓여 먹이고 낙지 삶아 먹이며 바나나 들려주는
어머니는 없을 줄 안다. 일본에서는 태풍에 떨어지지 않고 버티어 낸
사과를 합격사과라 하여 5만엔에 판다는 보도를 보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합격(合格)자가 새겨지도록 사과를 길러 판다. 한때
육자주(六字呪)라 하여 소원성취의 부적을 개당 5만원에 파는 점집이
보도되기도 했으며 홍콩에 낙제 팔자를 급제 팔자로 전환시킨다는
점쟁이집에 한국손님이 붐볐다는 보도도 있었다. 드디어 그 맹렬 미신이
인터넷까지 침범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