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글로리아 스타이넘
고려때 박유(朴愉)라는 재상이 우리나라는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
데다 원나라 사나이들이 고려인 첩을 많이 거느려 원나라 인구만 늘리고
있다고 개탄하고 일부이처다첩(一夫二妻多妾)제도로 국력을 보강하기를
상소했다.이 말이 여염에 번지자 성난 여인들이 박유가 행차하는
육조(六曹)거리에 늘어서서 갖은 야유를 퍼부었고 재상부인들은 조정에서
돌아온 남편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음으로써 조정에 상정된 이
의논에 압력을 가했다. 한국 여권운동의 맹렬성을 대변해주는 육조거리요
섹스 스트라이크였다.
고대 희랍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 전쟁으로 지새우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남편들을 전장에서 돌아오게 하고자 부인들이 결탁, 군자금이
보관돼 있는 아크로폴리스 신전의 정문 앞에 농성 섹스 스트라이크로
남편들을 무릎 꿇리고 만다. 여권운동이 극에 달했던 70년대에 온 세계의
맹렬여성들이 이 여권의 성지 아크로폴리스 정문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구호 가운데 하나가 「아담의 늑골을
돌려주자」였던 기억이 난다. 아담의 늑골 하나로 이브를 만들었다는
창세기의 여성 종속론에 대한 반기랄 것이다.
이 70년대 여권운동을 주도했던 맹렬여성의 대모(代母)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한국에 왔다.남자는 기혼 미혼을 가리지 않고 미스터(Mr)로
통하는데 왜 여성은 기혼(Mrs) 미혼(Miss)으로 차별하느냐고 우겨
미즈(Ms)란 말을 만들어 우리에게 익숙한 바로 그 여인이다. 그녀는
대변지 「미즈」를 창간하고 이 미즈 호칭을 보급시켜 왔는데 끝까지
버티었던 뉴욕타임스에서까지 이 말을 채용하게 한 스타이넘이었다. 결국
이 말은 남성들에게 도전적 이미지가 강하고 여성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해서 퇴조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물고기에게 자전거가
필요없듯이 여자에게 남자가 필요없다」고 결혼을 반대해서 유명한 그
스타이넘이 재작년 66세의 나이로 5년 연하의 남아공 출신 사업가와
결혼했는데 남편과 아내라는 차별용어를 쓰지 않고 그저 파트너로
대체하는 것만으로 그의 철학을 애오라지 유지했다. 한국에 머물며
여성운동가들과 교유할 것이라던데 국토분단만 없었던들 한국 여권운동의
성지 개성 육조거리에 가서 횃불이라도 올렸으면ㅡ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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