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맹모 삼천(孟母 三遷)
어제 있었던 총리 지명자 청문회에서 자녀들의 강남 학군에로의 위장
전입을 따지자 장 지명자는 맹모삼천(孟母三遷)의 정신으로 이해해
달라고 답변했다. 이 답변을 지하의 맹모나 맹자가 들었다면 땅을 치고
분해했을 것이다. 또한 옛 성균관 유생들이 들었다면
권당(捲堂·동맹휴학)하고 국회를 향해 데모를 했을 것이다.
맹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성 추현(鄒縣)에 가면 맹자를 모신
맹묘맹부(孟廟孟府)가 있다. 맹모가 집을 옮겼던 현장에 세워져 있던
맹모삼천비(碑)를 옮겨놓은 것을 보았는데 맨처음 무덤가에 살았을 때
맹자가 장례를 치르는 흉내만 내므로 시장 곁으로 집을 옮겼다. 이제는
장사 흉내만 내기에 서당 가까이로 세 번 이사했다는 고사를 기린
비석이다. 맹모가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는데 어린 맹자가 공부를
도중에 그만두고 돌아왔다. 이 때 맹모는 짜고 있던 베를 칼로
잘라보이는 「맹모단기(孟母斷機)」로 공부의 중단을 경계했던 것과
더불어 고금의 교육이념으로 알려진 고사다.
장 지명자는 이 숭앙받아온 맹모를 위장전입시킨 부모로 추락시킨 것이
된다. 첫째, 맹모는 실제로 집을 옮겼는데 장 지명자는 집은 옮기지 않고
위장전입을 한 것부터가 다르며 저의가 내포돼 있다. 둘째, 맹모는
환경이 자제의 자질을 해칠까봐 옮겼는데 장 지명자가 옮긴 것은 환경
영향과는 아랑곳 없는, 잘 사는 사람들이 다투어 가려는 선망 학군으로
옮긴 것이다. 셋째로 어렵게 살고 못사는 사람을 헤아릴 줄 알아야
사람이 된다는 차원에서 과소비가 난무하고 한국 최고의 유흥문화가
활기를 띠고 있는 학군에 살고 있다 해도 오히려 기피 학군으로 옮겨가는
것이 맹모삼천 정신인데, 그 역행을 하고 맹모삼천을 방패로 내세운
셈이다.
정조 때 명필로 김학성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과부인 홀어머니의 삯바느질로 가난하게 서당공부를 했다. 김학성이 어릴
적 어느 비오는 날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이상하여 어머니가 파
보았더니 금은보화가 가득한 솥이 묻혀 있었다. 난리 때 묻어놓고 피란
가 죽은 사람의 재물일 것이다. 이에 과부는 이를 땅에 다시 묻고 이사를
했다. 자식 둘이 대성한 후 임종에서 「재(財)는 재(災)」이기에 이사를
했다며 눈을 감았다. 이것이 맹모삼천 정신이지 위장전출과는 동떨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