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영국 酒幕
런던 교외 한적한 큰 길가에 투박한 술잔이 그려진 돌출광고를 한 퍼브를
찾아든 적이 있다. 벽난로를 중심으로 중세풍의 낡은 탁자와
의자들이 산재해 있고, 한쪽에는 당구대와 화살 던지기 과녁이
붙어있었다. 프런트에는 주인 할머니가 그릇을 닦고 있고 주인
할아버지는 자신이 팬 장작을 들고와 벽난로 앞에 부려놓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인근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트랙터를
몰고온 농부가 옷에서 검불을 떼며 들어왔고, 채권장사처럼 손가방을 든
사나이가 들어왔다. 퍼스트 네임을 다정하게 부르며 맥주 한 잔씩 시켜
들고 벽난로 앞에 모여 앉았다. 한 마을에 사는 이웃들로 집에 들어가기
전에 이 주막에 들러 감자튀김과 한 대포를 하고 정을 나눈 다음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는 것이다. 이 마을의 우편물이나 소포·신문·잡지 등도
퍼브의 주인이 집배하고, 인근 마을에 누가 딸을 낳고 귀족인 아무개가
사냥하러 이 마을 앞을 지나갔다는 등의 뉴스도 전달한다. 개인주의인
영국사람들인지라 만약 이 퍼브가 없었던들 집과 일터만을 오가는 것으로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이웃이나 남들과의 정을 주고받고 그래서
살맛나게 하는 영국구조의 소프트웨어요, 영국인을 인간적으로
결속시키는 구심체 구실을 해온 퍼브다.
서민의 사랑방만도 아니었다. 런던의 퍼브들에 들면 시인 예이츠가
앉았던 자리라느니, 작가 디킨스의 단골자리라느니, 찰스 2세가 애첩과
밀회했던 자리라느니, 크롬웰의 시체가 놓였던 자리라는 등 역사를 팔고
그 자리에 프리미엄을 얹어 앉히기도 한다.
영국에서 교회와 퍼브 없는 마을 찾기란 건초더미 속에서 바늘 찾기란
말까지 있다. 곧 영국인의 성스런 생활은 교회가, 속된 생활은 퍼브가
지배해 내린 것이다. 퍼블릭 하우스의 준말인 퍼브는 우리나라 주막처럼
숙소와 술집을 겸했던 것이 17세기부터 술집이 따로 분리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에 7만여곳이나 있었다던데 지금은
사양에 접어들어 영국의 인간 구심체가 해체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왔다. 이에 찰스 왕세자는 이를 영국인간주의의 사양이라 하고 퍼브
살리기 캠페인에 앞장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술집 살리기가 아니라
인간성 상실 시대에 인간성 회복 운동이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