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220]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성을 내지 않고 속으로 마음 다잡는 일을 우리는 보통 ‘참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 의미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한자는 ‘인(忍)’이다. 그러나 그 초기 글자꼴은 참 사납다. 날카로운 칼날[刃]이 사람 심장[心]을 후벼파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맥락을 고스란히 반영한 단어가 잔인(殘忍)이다. 본래는 창[戈] 두 개가 엇갈려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을 가리켰던 앞 글자 ‘잔’과 심장을 도려내는 칼날의 ‘인’이 합쳐진 단어다. 싸움의 그악함, 심각한 폭력성 등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나 뒤의 글자 ‘인’은 살이 잘리는 아픔까지 견뎌야 한다는 뜻을 키우다가 마침내 ‘참다’라는 새김을 더 얻은 모양이다. 참고 견디는 인내(忍耐), 너그럽게 참아주는 용인(容忍), 굳게 견디는 견인(堅忍) 등의 단어로 우리에게 친숙한 글자다.
살아가는 환경이 모질수록 참는 일은 많아진다. 전쟁과 재난이 자주 닥쳤던 중국의 인문 환경이 특히 그랬던 듯하다.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교훈이 퍽 발달했다. 속으로 꾹 참는 일은 은인(隱忍), 물러설 줄 아는 일은 인양(忍讓), 욕됨을 이겨내는 일은 인욕(忍辱)으로 적었다.
살아가며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뜻에서 그를 병법이나 무술 영역의 한 항목인 ‘인공(忍功)’으로 키웠고, 경전(經典)으로 취급한다는 의미에서 ‘인경(忍經)’으로도 적었다. 끝없는 인내심으로 대가족의 화목을 이뤘다는 ‘백인당(百忍堂)’의 일화도 꽤 유명하다.
잘 참고 견디는 중국인이 이제 일어나 불만과 억울함을 외친다. 강압적인 봉쇄와 격리의 ‘제로 코로나’ 때문이다. 살을 저미는 아픔은 누구라도 끝내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을 가리키며 공자(孔子)가 내뱉은 한마디가 생각난다. “이것을 참는다면, 어떤 일인들 못 참겠는가(是可忍, 孰不可忍).” 요즘 중국인들의 고초(苦楚)를 대변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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