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奸臣列傳] [270] 논거(論據)는 있어도 의거(議據)는 없는 까닭
입력 2025.01.22. 23:52
논(論)과 의(議)의 차이는 여러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다. 논(論)은 대체로 지난 일을 말하는 것이고 근거와 논리가 필수적이다. 반면에 의(議)는 미래에 관해 의견을 내는 것이고 굳이 근거를 내지 않아도 된다.
대표적인 것이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나오는 도유우불(都俞吁咈)이다. 도(都)와 유(兪)는 임금과 신하가 정사를 이야기하면서[議政] 긍정의 상황일 때 내는 감탄사이고 우(吁)와 불(咈)은 부정의 감탄사이다. 원래 도유우불은 임금과 신하가 거리낌없이 자기 의견을 밝힐 수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지금의 초점은 조금 다르다. 앞으로의 일에 관한 의견[議]을 낼 때는 이처럼 얼마든지 짧게 말할 수 있다. 근거도 필요없다. 그래서 국어사전에도 의거(議據)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논(論)은 책임과 무관하고 의(議)에는 권한과 책임이 따른다. 고대 중국에 이미 의랑(議郞)이 있었고 의자(議者)가 있었다. 모두 자격을 갖고서 국정에 관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옛날부터 논(論)이 권한과 책임을 갖는 분야가 있다. 법조계와 학계가 그곳이다. 검사의 구형, 변호사의 변론, 판사의 판결은 모두 논(論)이지 의(議)가 아니다. 학계 또한 논문(論文)이라고 하지 의문(議文)이라고 하지 않는다. 특히 판사의 판결은 논(論)이어야지 의(議)여서는 안 된다. 의(議)에는 당파성이나 사견이 개입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론(公論)이나 공의(公義)는 자주 써도 공의(公議)는 잘 쓰지 않는다. 협의체의 결론 정도가 공의(公議)라 할 수 있지만 극히 제한적이다.
서부지법 차은경 부장판사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발부한 ‘15자’ 구속영장은 논거와 논리가 빠졌다는 점에서 누가 보아도 논(論)보다는 의(議)에 가깝다. 공론(公論) 공의(公義)에 대한 고민도 없어 신뢰 상실을 자초했다. 사법부 전체가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음미하며 자성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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