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왔나/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다시 한 번 어루만지며 떠나가는 장충단 공원'.(1967) 중후한 저음과 바이브레이션이 두드러진 목소리, 게다가 중절모를 쓴 탓에 다들 중년 신사로 오해했다. 하지만 가수 배호(裵湖·1942~1971)는 당시 25세였다.
배호는 예명이고, 본명은 배만금. 13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 무렵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살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부산의 한 고아원으로 갔다가 이듬해 서울로 올라왔다. 악단장인 외삼촌 김광빈 아래에서 1년 동안 드럼을 배웠다. 김광빈은 배호를 악단 드러머로 미8군 무대에 세웠다. 1963년 첫 앨범 '두메산골'을 내며 배호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1960년대, 우리 농촌 경제는 거덜이 났다. 정부의 저곡가 정책으로 농사짓는 일은 희망이 없고 삶은 팍팍했다. 내 외삼촌들도 농사일을 내팽개치고 고향을 떴다. 고향을 등진 농촌 처녀와 청년들은 구로공단이나 동대문 봉제공장에 취직했다. 배호가 호명한 서울의 삼각지, 명동, 장충단 공원에는 비가 내리거나 안개로 자욱했다. '쨍하고 해 뜰 날'은 저 멀리에 있었다. 비와 안개, 이 불순한 기후는 가망 없는 미래를 안고 객지를 떠돌던 청춘의 시름과 불우함, 외로움과 고단함을 빗대었던 게 아닐까? 배호는 '돌아가는 삼각지'에 이어 '안개 낀 장충단 공원'
의 연이은 성공으로 가수의 정상에 올랐다. 그 성공을 시샘하듯 병마가 덮쳤다. 나이 24세. 신장염이었다. 배호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신곡을 내고 무대에 섰다. 그가 가수로 무대에 선 건 고작 여덟 해. 부른 노래는 300여 곡. 1971년 11월 7일, 배호는 서른도 채우지 못한 채 무대에서 '마지막 잎새'를 부르며 쓸쓸하게 한 잎 낙엽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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