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끄지 사태는 ‘인권’ 방치가 자초
‘핵’만 보다간 북, ‘제2의 사우디’ 된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다음 중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①일본 ②한국 ③북한 ④사우디아라비아
워싱턴의 정답은 ④번이다. 왜 그럴까. 트럼프가 2015년 8월 대선 유세에서 했던 연설에 답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난 그들 모두와 너무 잘 지낸다. 그들은 내 아파트(트럼프 타워)를 사 준다. 4000만, 5000만 달러를 쓴다. 내가 그들을 싫어해야 하나?”
그리고 취임 후. 트럼프는 주변의 예상을 깨고 첫 순방국으로 사우디를 택했다. 그런 트럼프에게 사우디는 1100억 달러(약 125조원)란 역대급 무기 구매로 화끈하게 선물을 안겼다. 트럼프는 이에 홀딱 빠졌다. 오바마 등 역대 미 대통령이 거론했던 사우디 인권 문제는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지난 8월 미국의 대응은 충격이었다. 사우디가 자국 인권운동가 15명을 체포하자 국제사회를 대표해 캐나다가 총대를 메고 일어섰다. 그러자 사우디는 캐나다에 무역 동결, 항공노선 폐쇄 등으로 보복했다. 당시 미 국무부 브리핑에서 한 미국 기자가 물었다. “왜 미국은 침묵하는가.” 헤더 나워트 대변인의 답은 이랬다. “양측이 외교적으로 알아서 하면 된다. 우린 할 수 있는 게 없다.” 미 로비 업체에 연간 2730만 달러를 뿌리는 오일머니를 인권보다 우선했다. 트럼프의 방치는 사우디의 방종을 불렀다.
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 살해 사건은 그 결과물이다. 사우디의 대응은 국제사회를 우롱한다. “영사관에서 제 발로 나갔다”고 하더니 “몸싸움 끝에 사망했다”고 했다. “왕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잡아떼고 있지만 현장 요원과 왕세자실 책임자가 당시 네 차례 통화한 사실이 폭로됐다. ‘대역’에게 카슈끄지의 옷을 입혀 영사관에서 빠져나가게 한 사실도 탄로났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사우디의 설명은 신뢰할 만하다”란다.
그 반동(反動)은 ‘엉뚱하게’ 북한으로 튈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에선 “북한 인권을 방치하면 ‘제2의 사우디’ 꼴이 날 것”이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일머니’를 이유로 사우디를 오냐오냐 모시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됐듯 ‘핵’을 이유로 북한의 인권을 나 몰라라 하다간 북한을 ‘동북아의 사우디’ 같은 국가로 키울 수 있다는 우려다. 사실 고모부(장성택)를 기관총으로 총살하고, 이복형(김정남)을 국제공항에서 신경작용제 VX로 독살하고, 정치범 수용소에 8만~12만 명(미 국무부 보고서)을 구금하는 나라의 인권 유린이 사우디보다 덜하다 할 순 없을 게다.
트럼프는 카슈끄지 사건으로 인권을 외면하는 대통령이 아니란 것을 보여줘야 할 국면으로 몰리고 있다. 북핵 협상에서 인권 문제를 꺼내 들, 아니 꺼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인권을 최우선하는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하면 더더욱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인권 변호사 출신인데, 세계적 인권 탄압국의 지도자와 손잡고 포옹하는 게 불편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국제적으로 압박한다 해서 인권 증진의 효과가 바로 생기는 게 아니다.” ‘협력’을 통해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드는 게 우선이란 주장을 폈다.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을까. 이번 사우디 사태는 압박 없는 인권 개선 없고, 인권 개선 없는 정상 국가 없음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북한이라고 그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우리가 북한에 위협을 느끼는 건 그냥 북한에 핵이 있어서가 아니다. 무자비하게 인권 유린을 가하는 정권이 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북핵 협상에서 인권 문제가 후순위가 돼선 안 되는 이유를 이번에 사우디가 보여줬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