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과학&미래] 발 묶인 채 뛰는 한국 과학기술

bindol 2018. 11. 1. 06:36


최준호 과학&미래팀장

최준호 과학&미래팀장


사방이 적들로 둘러싸이고 수시로 테러가 발생하는 환경이라 그럴까. 예루살렘의 운전자들은 여유가 없고, 공격적이다. 차선을 바꾸려고 해도 쉬 틈을 주지 않는다. 예루살렘에서 경험한 완전자율주행차도 그곳 사람들을 닮아있었다. 옆 차선에 빈틈이 생기면 ‘왱~’하니 엔진 회전수를 급하게 올리며 민첩하고 거칠게 파고든다. 성격 급한 인공지능(AI)이다. 모빌아이가 개발 중인 완전자율주행차 주행 테스트였다. 12개의 카메라에서 들어오는 시각정보, 초고정밀 지도, 지역별 운전 습관이나 환경에 맞춘 자율운전 판단…. 아직 개발 중인 것이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인간을 닮은, 아니 인간보다 더 뛰어난 자율주행 시스템이었다.
 
모빌아이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암논 샤슈아 회장이다. 그는 히브리대 현직 교수이기도 하다. 자신의 연구를 더 확장해보고 싶은 마음에 회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게 지난해에는 글로벌 기업 인텔에 인수되면서 무려 17조원의 대박을 터뜨렸다.
 
예루살렘 본사에서 샤슈아 회장과 대화를 나누는 중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알데바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2016년 말 내놓은 무인자율차 전용 프로세서다. 당시 ETRI는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전력 소모 측면에서 세계 어느 제품에도 뒤지지 않는다” 며 “더는 국내 기업이 외국산 설계 및 프로세서를 사오는 일이 없이 무인차의 센서 데이터 처리 및 자동차를 제어하는 반도체 기술을 보유하게 된 것”이라고 흥분했다.  
     
알데바란 기술은 이후 국내 한 중소기업이 넘겨받아 시스템으로 개발 중이다. 하지만 처음 얘기대로 국내 자동차 관련 업체의 부품 국산화에 기여했다는 소식도, 모빌아이처럼 어딘가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거나 인수됐다는 소식도 아직 들리지 않는다. ETRI의 한 연구자는“규정상 국책연구기관 연구 결과물의 기술 이전은 중소기업 위주로 할 수밖에 없다”면서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기술을 전수받다 보니 후속 개발도 시장 확보도 어려운 면이 있어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연구능력으로는 세계 어디에도 비길 바 없지만, 연구개발(R&D) 기획에서부터 산·학·연이 따로 놀고, 이후에도 이념성 규제에 묶여서 생기는 한국형 고질병이 그 원인이다. 세계는 어지러운 속도로 달려가는데, 이 땅의 과학기술자들은 자의든 타의든 발목이 묶인 채 오늘도 답답한 연구실에 갇혀있다.
 
최준호 과학&미래팀장 

[출처: 중앙일보] [과학&미래] 발 묶인 채 뛰는 한국 과학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