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소통 말하려면
탈원전 도그마 버려야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공감과 소통 말하려면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운명적으로 함께 어울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수학에선 배반사건(exclusive events)이라 부른다. 주사위를 던져 짝수가 나왔다면 그때 홀수인 3이 (같이) 나올 확률은 0인 것과 같다. 미세먼지 감축과 탈원전이 딱 그런 사이다. 둘 다 대통령 공약이지만, 운명이 서로를 갈라놓았다. 대통령은 미세먼지를 임기 내에 30% 줄이겠다고 했고, 탈원전도 약속했다. 정권 출범 1년 반이 지나 현실을 보니 언감생심, 둘은 서로 배반사건 관계였음이 확인되고 있다. 탈원전을 밀어붙이자 되레 석탄화력 발전이 늘어났다. 지난해 30%였던 원자력 발전 비중이 올 들어 9월 말까지 26.8%로 줄자 지난해 38.7%였던 석탄화력 발전은 41.9%까지 늘었다. 전기가 모자라면 값이 싼 전력부터 먼저 돌리는 경제 급전 원칙 때문이다. 석탄화력은 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할 때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가장 많이 배출한다. 석탄발전은 미세먼지 주범 중 3위(15%)다. 석탄발전을 줄이지 않고는 미세먼지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려면 탈원전을 포기하거나 완화해야 한다. 줄어든 원전을 대체하기에 신재생 에너지는 아직 멀었다. 설비도 부족하고 불안정해 기저 발전으로 쓸 수 없다. 그렇다고 LNG 발전을 대폭 늘리면 전기요금이 폭등한다. 이래저래 감당할 수 없다. 미세먼지든 탈원전이든 어느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느 것을 포기해야 하나. 당연히 탈원전이다. 대통령이 늘 강조하는 공감과 소통으로 봐도 그렇다. 우선 국민이 미세먼지(82.5%)를 방사능(54.9%)보다 무서워한다. 피해도 미세먼지가 훨씬 크고 광범위하다. 탈원전 찬성 여론도 크지 않다. 원자력학회가 두 차례 설문조사한 결과 국민 10명 중 7명(67.9%)이 원전 비중 유지·확대를 원했다. 원전 축소·제로화는 28.5%에 그쳤다. 탈원전 포기는 장점도 많다. 누구나 알듯 양질의 일자리, 산업 경쟁력, 미래 먹거리에 도움이 된다. 이건 어쩌면 작은 것들이다. 더 큰 국가적 이득이 있다. 협치다. 탈원전을 포기하면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과 손잡을 수 있다. 녹색성장이야말로 이 정부의 환경 이념과 딱 들어맞는다. MB는 녹색성장을 위해 2030년까지 원전(15.9%→27.8%)과 신재생 에너지(2%→11%) 비중은 확 늘리되 석탄발전(24.3%→15.7%)은 확 줄이는 1차 에너지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태양광 위주의 신재생 에너지 확대가 “좌파의 돈줄이 될 수 있다”는 측근의 반대도 물리치고 내린 결정이었다. 이 정부의 2030 신재생 에너지 계획과 큰 흐름이 같다. 탈원전이 아니라 탈석탄이란 점이 다를 뿐이다. 대통령이 통 크게 한발 다가가면 된다. 이미 조짐도 있다. 지난달 20일 대통령은 “녹색성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P4G)’ 정상회의에서다. 청와대는 “좋은 정책은 어느 대통령이 만들었든 계승·발전시킨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말이 그저 ‘외교용’이 아닐까 현장에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탈원전 포기는 이런 의구심을 씻게 해줄 것이다. 걸핏하면 지난 정부 탓만 하는 정부란 오명도 벗을 수 있다. 반면 탈원전을 고집하면 득은 없고 실만 있다. 일자리를 잃고, 국민 세금으로 중국 기업 좋은 일만 시킬 것이며, 무엇보다 미세먼지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통령은 19일 책 한 권을 소개하며 “내가 생각한 공감과 소통, 얼마나 얕았는지 새삼 느낀다”고 했다. 어떤 공감, 어떤 소통 부족을 말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저자인 정혜신 박사가 쌍용자동차 해고자를 위한 심리치료센터를 만든 인물이고 보면 노동 쪽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노동으로 쏠리는 대통령의 단심(丹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바라건대 탈원전과 미세먼지도 그 안에 한 조각 있었으면 참 좋겠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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