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석 문학평론가
처음 읽기엔 쉽지만 두 번째부터는 조금씩 어려워진다. 쓰인 말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이 품은 사연들이 간단치 않아서다. 박준의 두 번째 시집(『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을 머리맡에 두고 하는 이야기지만 소설에서와 달리 시에서는 사실 흔한 일이다. 어떤 일의 경위와 인과를 조목조목 해명할 겨를이 시에서는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박준의 시가 품은 사연들이 조금 ‘다르게’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 봄에는 널려 있었다”(‘그해 봄에’)고 말할 때 그 일들이 가리키는 것은 단지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 시 속의 “당신”이 어느 봄에 죽으려 했던 구체적 사건만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널려 있었다”고 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박준의 시에 드러난 느낌과 생각들은 누구나 한번은 겪었음 직한 무엇으로 자주 넓어진다. 누구나 겪어본 마음에 관한 이야기들이기에 쉽게 읽힌다고 할 수 있지만 시인 또는 시적 화자가 그런 마음들에 유독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은 종종 심연 가운데 잠겨있기에 이를 궁금해 하는 누군가에겐 미로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반복해 읽을수록 실은 그것만 오롯이 남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박준 시집 『우리가 함 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요컨대 박준은 ‘나’를 통해 세상을 보여주기보다 ‘나’가 마음을 기울인 대상을 통해 가까스로 ‘나’의 존재를 암시하는 시를 쓴다. 대상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 듯한 시적 태도가 이와 무관하지 않고 현재를 유보한 채 이미 지나버린 과거를 소환해내곤 하는 작법도 그 근처다. 그러나 읽는 이에게 위화감을 거의 주지 않는 이런 방식의 시 쓰기가 얽히고설킨 시속(時俗)에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라고만 이해한다면 얼마간 서운한 일이 될 것이다. “언 손이 녹기도 전에 / 문득 서럽거나 / 무서운 마음이 들기도 전에 // 우리는 밥에 숨을 불어가며 / 세상모르고 먹을 것”(‘좋은 세상’)이라는 다짐이 그렇듯 박준의 시는 나와 세상 안팎의 소란을 일일이 따져 묻지 않고 물러서서 자리를 내주고 감싸준다. 속없이 무작정 그러는 것이 아니라 “넘어짐과 일어섬 그마저도 지나서”(‘가을의 말’) 그렇게 하기에 그것은 힘이 있고 든든하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힘도 대개는 손 내미는 사람들의 이런 겸허에서 나온다.
◆약력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문학평론가, 계간 『창작과비평』편집위원
강경석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