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분수대] 우리는 감옥에 산다

bindol 2018. 5. 9. 05:41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뛰어 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더니, 아무리 도망쳐도 벗어날 수가 없다. 어딜 가나 카메라와 센서가 내 움직임을 끊임없이 따라다닌다. 빈방인가 싶어 살짝 들어서면 사방팔방의 카메라가 얼굴과 전신을 번갈아 클로즈업하며 내 동선은 물론 같은 시간 머무른 타인과의 심리적 거리까지 추적한다. 묘하게 나를 바라보는 벽면의 커다란 눈을 피하려고 빨리 걸으면 눈동자도 나를 따라 같이 움직인다. 옷매무새라도 매만질까 싶어 거울 앞에 서면 나보다 먼저 이 거울 앞에 섰던 이들의 모습이 나를 둘러싸듯 여러 겹 겹쳐지며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하루에도 수백 번. 의식하든 안 하든 우리는 수없이 사진 찍히고 동선을 읽히며 누군가로부터 감시당한다. 현대인이 일상에서 다반사로 겪는 이런 은밀한 감시와 통제를 대놓고 놀이처럼 만든 전시가 있다기에 지난주 보러 갔다. 바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개관전으로 열린 멕시코 출신 캐나다 미디어 아티스트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디시전 포리스트’다.
 
처음엔 다들 그러하듯이 수동적으로 카메라와 센서에 반응할 뿐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굳이 기계 안에 손가락을 쑥 집어넣어 내 지문 정보로 온 벽면을 도배하고, 음성인식기에 목소리를 녹음해 전시실 하나를 온통 내 음성으로 채운다. 오로지 제멋대로 반짝이던 240개의 전구가 내 심장 박동에 맞춰 동시에 명멸하는 걸 보기 위해 지문·목소리보다 더한 생체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  
     
처음엔 미술 전시라기보다 테마파크처럼 재밌다고 낄낄거리다 문득 섬뜩했다. 우리 일상과 너무 닮아서다. 카메라와 지문인식기 등 온갖 감시기구에 둘러싸인 환경은 물론이려니와 아무 생각 없이 SNS 등에 은밀한 속마음과 사진 같은 스스로의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그 위험성엔 눈을 감고 그저 재밌다고 즐기는 모습, 그래서 결국 알고리즘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당하는 우리의 삶 말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인간에게 주어진 ‘표현의 자유’에는 입을 다물고 생각을 밝히지 않을 권리가 포함돼 있지만 정보가 주도권을 쥔 ‘정보의 자유’는 그러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인간을 거대 시스템 안의 작은 칩으로 만든다고.
 
우리는 모두 감옥에 산다. 스스로 통제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거대한 시스템의 부속품이 되기를 자처하며 감시와 통제를 기꺼이 즐기는 그런 감옥 말이다.
 
안혜리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우리는 감옥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