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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세운 박정희가 초대 원장을 물색했다. 김학렬 부총리가 김만제 서강대 교수를 천거했다. 다만 "나이가 37세로 조금 적은 게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신문 칼럼으로 그를 알았던 박정희가 되물었다. "임자, 내가 혁명한 게 몇 살 때요?" 원장이 된 김만제는 미국에 있는 30대 경제학 박사들에게 편지부터 썼다. "조국 경제 발전을 위해 함께 일하자." 박영철 전 청와대 경제수석, 구본호 전 울산대 총장,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 같은 이들이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만제가 재무부 장관과 부총리를 지낸 1980년대 중·후반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었다. 국민연금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기상조라는 반대가 많았다. 타이밍을 살피던 김만제는 대통령과 유럽 4개국을 돌아보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입을 뗐다. "우리 경제도 많이 성장했습니다. 유럽처럼 은퇴자가 노후 걱정 않고 살게 해줘야 할 때입니다." 반대쪽이었던 전두환이 고집을 꺾었다.
▶YS 때 포항제철 회장으로 '외부 인사' 김만제가 지명됐다. YS의 당부는 "정치권 압력에서 자유로운 체제로 만들라"였다. 그런데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 수석이 전화를 걸어와 선거 자금을 요구했다. 김 회장이 거절하자 수석은 불같이 화를 냈다. 김만제는 "그러지 말라고 나를 보낸 거 아니냐"고 했다. ▶김만제는 2000년 대구 수성갑에서 초선 의원이 됐다. 하지만 4년 뒤 한나라당에 물갈이 바람이 불었고, 김은 일흔을 넘긴 나이가 문제였다. 억울했지만 연연해 하진 않았다. "대구를 살릴 경제 전문가가 오면 물러나겠다"고 했다. 대우경제연구소장 출신 이한구 의원이 지역구를 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이 당시 경제부총리를 매섭게 추궁했는데, '은퇴한 KDI 선배' 김만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공직자는 늘 대한민국 발전만 생각한다. 그 입장을 헤아려줘라." 김만제는 늘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했다. ▶그는 남덕우 총리, 이승윤 부총리와 함께 성장 담론을 주도한 서강학 파 트로이카였다. 성장의 4대 축인 '정(政)·관(官)·산(産)·학(學)'을 모두 거쳤다. 그의 빈소에선 "한 시대가 저물었다"는 말이 나왔다. 서강학파는 저물었는데 그 맞은편에서 분배를 강조해온 변형윤 전 서울대 교수의 학현학파는 정부의 주류가 됐다.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한 인물의 별세 소식이 자성(自省)할 줄 모르는 분배 중심 정책 뉴스들과 오버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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