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약품 민강 초대 사장
'생명을 살리는 물' 활명수를 통해 독립운동에 헌신한 동화약품! 동화약품은 1897년에 창립된 국내 유일의 '일업백년(一業百年)' 제약사이다. 동화약품은 '민족이 합심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정신 아래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활명수를 판매한 돈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우리나라 제약 산업은 1897년 궁중 선전관이었던 민병호 선생이 국내 최초 양약인 '활명수'를 개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아들 민강<작은 사진> 선생과 함께 활명수의 대중화를 위해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을 창업했다. 활명수가 최초로 개발된 시기에는 민중들이 급체, 토사곽란 등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는데, 당시 활명수는 그 의미 그대로 '생명을 살리는 물(살릴 活, 생명 命, 물 水)'이라 불리며 만병통치약 대접을 받았다. 동화약품은 또한 독립운동에 헌신한 기업이다. 초대 사장인 민강 선생은 1909년경 비밀결사대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한성임시정부 수립과 국민대회 개최를 추진하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는 일본인들 중심으로 조직된 '한국약제사회' 가입을 거부하며 동화약방을 독립운동자금 조달 거점 기지로 활용하였다.
민강 선생은 3·1운동 직후 체계화된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내 사이 비밀 연락망인 '서울연통부'를 운영했다. 국내외 연락을 담당하고 정보를 수집했으며, 활명수 판매 금액을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으로 전달하는 행정책임자 역할을 맡았다. 당시 활명수 한 병값은 50전으로 설렁탕 두 그릇에 막걸리 한 말을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독립 운동가들은 중국으로 갈 때 활명수를 가지고 가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고 한다. 민강 선생은 1963년에 그 공훈이 인정돼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1936년 8월에 열린 독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서 손기정, 남승룡 선수가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이루었다. 동화약품은 그해 8월 11일 자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했다. 명목은 활명수 홍보였지만 내용 면으로는 암울한 시대에 조선인의 기개를 세계만방에 떨친 두 선수의 선전을 우리 동포들에게 널리 알리는 메시지였다. 그런데 당시 동화약품은 민강 사장 사후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유하고 있던 동화약품은 조선 동포들에게 애국심과 자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와 같은 광고를 게재한 것이다.
활명수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현재까지도 전 세계 어린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물'로 거듭나고 있다. 활명수는 매년 독특한 디자인을 담은 아트 콜라보레이션 '활명수 기념 판'을 선보이며, 기념 판 판매수익금을 물 부족 국가의 식
수 정화, 우물 설치, 위생 교육 사업 등을 지원하는 사회공헌 활동에 사용하고 있다. 동화약품은 그 동안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했으며, 2017년에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식수 및 위생 사업을 지원했다. 지난해 패션브랜드 '게스'와 함께 선보인 121주년 기념 판 판매수익금 역시 사회공헌활동에 전액 기부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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