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서진영의 CEO 명심보감] [30] 동화약방과 활명수

bindol 2019. 3. 1. 05:40

서진영 자의누리 경영연구원 원장
서진영 자의누리 경영연구원 원장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100년 전 3·1 운동, 꽉 막혔던 자유권과 자존권에의 갈망이 터져 나왔다. 당시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의 민강(閔橿·1883~1931) 사장은 제약업을 통해 번 돈으로 3·1 운동과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급체, 토사곽란 등으로 목숨까지 잃는 일이 많았던 시절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고 불린 활명수(活命水)를 판 자금이었다. 이는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8장에 나오는 수선이만물(水善利萬物),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말의 현실 구현이다.

1909년 민강 사장은 80여 명의 독립운동가와 함께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조직하여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칠 것을 맹세했다. 1919년 7월 상해임시정부가 비밀연락 행정의 첫 조치로 국내외를 연락하는 방법으로 연통제를 실시함에 따라 서울 연통부(聯通府)를 동화약품 순화동 본사에 설치하여 독립투사로 활약했다.

민강 사장은 행정책임자로서 연통부를 운영하면서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으로 독립 자금을 조달해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당시 활명수 한 병 값은 무려 50전으로 설렁탕 두 그릇에 막걸리 한 말을 살 수 있는 가격이었는데,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으로 이동할 때 활명수를 지참했다가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민 사장은 결국 1921년 일본의 감시망에 걸려 수차례 옥고를 치르다 모진 옥살이와 고문 후유증으로 1931년 별세한다. 하지만 활명수의 정신은 국내 최고(最古) 제조 회사, 최고(最古) 제 약 회사, 최초의 등록상표, 최초 등록 상품의 4대 기록과 함께 기업인의 모범으로 이어지고 있다.

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고유한 자유권을 호전하여 풍성한 삶의 낙을 향유할 것이며, 우리의 자족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세계에 겨레의 뛰어남을 꽃피우리라"라는 '독립선언서'의 한 구절을 읽으며 민강 사장과 기업인의 사명을 생각해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28/20190228034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