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만물상] 실패한 정상회담

bindol 2019. 3. 2. 04:52

1961년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소련 지도자 흐루쇼프를 빈에서 만났다. 미·소 냉전의 절정기였다. 미국의 쿠바 피그스만 침공 작전 실패, 베를린 장벽 등이 현안이었다. 흐루쇼프는 아들뻘 케네디를 몰아붙였다. 이념 논쟁은 감정 싸움으로 번졌다. "전쟁을 하려면 하라." "추운 겨울이 될 것이다." 성과 없이 회담장을 나선 케네디가 기자에게 말했다. "내 평생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오." 빈 공항을 이륙하는 케네디의 표정은 우울했다. 한 측근은 "대통령 전용기가 마치 월드시리즈에서 패한 야구팀이 탄 비행기 같았다"고 했다.

▶'정상(summit)회담'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다. 1950년 소련에 회담을 제의하며 '정상에서의 회담(parley at the summit)'이란 표현을 썼다. 등산 용어를 외교에 갖다 붙인 사정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 에베레스트산 등반 열기와 관련 있을 것이란 추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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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은 대개 의제(議題)와 의전(儀典)이 사전에 거의 완벽하게 조율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게 관례다. 회담 날짜와 장소가 확정되면 사실상 합의문 초안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그래서 외교가에선 "정상회담은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 정상회담사를 돌아보면 케네디·흐루쇼프 회담처럼 실패한 경우도 적지 않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1986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핵군축 회담도 그 자체로는 실패였다. 고르바초프는 '스타워즈 계획'으로 불린 전략방위구상(SDI)을 "연구용으로 제한하자"고 했지만 레이건은 손사래 쳤다. 두 사람은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그건 나도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상호 비난전도 오갔다. 그러나 1년 뒤 반전이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중단거리 핵전력을 폐기하는 INF 협정에 서명하기 위해 몸소 미국 땅을 찾았다. 레이건의 버티기에 손을 든 것이다. 득의만면한 레이건이 서명식에서 러시아 속담을 꺼냈다. "신뢰하라, 하지만 검증하라."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1938년 뮌헨 회담 후 "우리 시대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했다. 회담은 당장 성공한 듯 포장됐다. 그러나 히틀러는 곧바로 폴란드를 침공했고 체임벌린은 무책임의 상징이 됐다. 트럼프·김정은 하노이 정상회담은 실패했다. 하지만 '잘못된 합의보다는 합의가 없는 것이 낫다'는 외교 격언이 있다. 실패가 성공으로 포장되면 다음 번 성공 기회마저 없어진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1/20190301025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