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데스크에서] 우회전 아니라 후진이다

bindol 2019. 3. 13. 05:28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이인열 산업1부 차장

문재인 정부가 출범시킨 노사정 대화 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표류하고 있다. 첫 합의인 탄력근로제 확대 방안이 최종 의결에 실패했다. 민노총에 이어 비정규직 대표 등이 반발해서다. 지금 노동계는 문재인 정부가 초심을 잃고 '우향우'하고 있다고 외친다. 과연 그게 문제일까.

'타격을 주려다 타격만 입었다.' 얼마 전 KB국민은행 노조의 파업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직원 5000명 이상이 파업했는데 고객들은 그들이 파업한 줄도 몰랐다. 국내 파업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같다. 무리한 파업으로 국민을 불편하게 해 역풍을 맞는 경우는 왕왕 봤지만 국민이 아무 불편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파업도 있다니….

'KB국민은행 파업 쇼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호모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등의 역작을 쓴 유발 하라리의 최신 저서 한 대목을 인용할까 한다.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중국 공산혁명을 일으킨 주체는 경제에서 핵심이지만 정치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노동자)이었다면,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만든 사람들은 정치권력을 누리면서 앞으로 경제 가치를 잃을까 걱정한 사람들(중산층)이다. 앞으로는 사람을 착취하는 경제 엘리트가 아니라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경제 엘리트에 맞서는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이 싸움은 쉽지 않다. 착취와 싸우기보다 무관심과 싸우는 게 더욱 힘들기 때문이다."

미래의 노동정책은 착취하는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이 필요 없다는 자본가를 상정해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최저임금으로 인건비가 급등하자, 무인 자판기가 종업원을 대신하는 현상은 이미 곳곳에서 목격된다. 일자리가 없어지는 시대에 사회 안전망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고민 대신, 사회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최저임금을 급등시켜 한계 선상에 있는 자영업자들을 무더기로 사회 안전망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글로벌 노동시장과 로봇에 일자리를 뺏기기 전에 국내에서 인위적으로 올린 최저임금 때문에 저생산성의 저임금 일자리가 사라지는 우리나라의 '실업 대란'은 시대착오적이다.

현 정부는 노동 개혁은 외면한 채 대기업을 향해 "채용 늘리라"고 윽박지르고, 정규직화를 부르짖으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와는 동떨어진 '평생 직장'을 꿈꾼다. 우리보다 앞서 노동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했던 선진국들의 경험은 강고한 대기업 노동조합의 기득권을 깨뜨려 고용과 임금의 유연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가려운 곳은 놔두고 엉뚱한 곳만 긁어놓으니 해결은 안 되고 부스럼만 잔뜩 생기는 것이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우회전하는 게 아니라 후진 기어를 넣고 뒤로 가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12/20190312036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