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이철호 칼럼] 한국이라면 아마존의 베이조스는 수없이 죽었다

bindol 2019. 3. 13. 05:55

고객 중심과 주주 우선의 베이조스
한국이라면 반노조와 갑질 횡포
검찰, 공정위가 그냥 둘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의 제2 벤처 붐 선언도
언제 신기루처럼 사라질지 몰라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요즘 가장 핫한 인물은 아마존 CEO인 제프 베이조스일 것이다. 아마존은 올해 1월 시가총액 세계 1위에 올랐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페이스북을 발 아래 두고 있다. 덩달아 베이조스는 개인 자산 145조원으로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됐다. 곧 이혼할 부인 매킨지에게 그 절반인 72조원을 넘겨줄지도 화제다.  
 
하지만 한국에 태어났다면 베이조스는 죽어도 여러 번 죽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최고 권력자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지난 대선 때부터 트럼프는 앙숙인 베이조스를 향해 "반드시 손보겠다”고 협박했다. 실제로 트럼프 집권 이후 아마존 본사는 두 번 압수수색을 당했으나 베이조스는 "우리는 이미 큰 회사고, 큰 회사가 정부 조사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버티고 있다.    
 
베이조스의 DNA는 리버럴이다. 그러나 그는 2014년 국제노총(ITU)에 의해 ‘가장 나쁜 CEO’로 선정됐다. 아마존 물류 센터 근로자의 하루 평균 이동 거리는 24㎞. 그것도 모자라 혹시 빈둥거릴까 위치추적기를 채워놓고 감시한다. 정작 베이조스는 "나는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존의 근무 환경이 자랑스럽다”고 받아친다. 아마 한국이라면 민주노총에 얻어터지고 노조 활동 방해 혐의로 검찰의 압수수색이 무한 반복됐을 것이다.  
 
베이조스의 신기술도 한국에선 교도소로 가는 지름길이다. 1999년 아마존을 전자상거래 최강자로 올려놓은 원 클릭. 이 간편 결제수단이 한국에선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 때문에 2014년까지 불법이었다. 아무리 쉽고 빠르게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도 금융위원회의 눈에는 방화벽이 허술한 불량 상품이었다. 결국 대통령이 나서 왜 중국인들이 한국산 ‘천송이 코트’를 온라인 쇼핑으로 못 사느냐고 화낸 뒤에야 금융위는 꼬리를 내렸다.  
 
이철호칼럼

이철호칼럼

2007년 선보인 전자책 킨들도 마찬가지다. 아마존이 모든 책을 월 9.99달러에 무제한 구독하게 하자 영세 출판사들이 반발했다. 베이조스는 이들을 향해 "고객에게 질좋은 콘텐트를 싸게 공급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라며 모두 킨들에서 쫓아내 버렸다. 노골적인 갑질이었다. 한국이었다면 골목 상권 짓밟았다며 국회 청문회와 공정위의 몽둥이질에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존은 독특한 회사다. 직원은 베이조스를 싫어하고 베이조스도 직원을 싫어한다. 그래서 베이조스는 로봇에 1조원을 투자해 지금은 사람 대신 로봇이 물류 창고를 돌아다닌다. 요즘 베이조스는 택배 직원을 대체할 드론 개발에 열을 올린다. 앞으로 고객 상담과 캐셔까지 인공지능에 맡기는 완전 무인화가 그의 꿈이다. 베이조스는 입도 험악하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외치는 사람치고 일 잘하는 직원 못 봤다”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한국이라면 워라밸 세대와 시민단체들이 가만있었을까.  
 
반노조와 골목상권 파괴, 갑질에다 직원 경멸까지….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절대적 신뢰를 보낸다. 지난 8년간 아마존의 종업원은 20배나 늘어 60만 명에 이르고 주가는 4배나 뛰었다. 베이조스는 "고객 중심과 주주를 위한 장기적 경영”을 성공 비결로 꼽았다. 직원들을 쥐어짜고 납품 단가를 후려치는 것도 고객에게 값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공급하려는 목적이란 것이다. 미 뉴욕대의 스콧 캘러웨이 교수는 "향후 50년 안에 애플·구글·페이스북이 사라지겠지만 아마존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뛰어난 경쟁력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오래 전부터 베이조스를 눈여겨본 듯하다. 2017년 당선 직후 가장 먼저 인터뷰한 매체가 베이조스의 워싱턴 포스트였다. 지난 6일 ‘제2의 벤처 붐’ 선언 때도 문 대통령은 아마존을 자주 언급했다. “아마존이 미국 10대 그룹에 진입했다. 정부 주도로 대형 펀드를 조성해 스타트업들을 유니콘으로 키우겠다” "아마존이 스타트업을 적극 인수합병하는 것처럼 우리도 벤처지주회사를 지원하겠다” ….  
 
하지만 문 대통령이 과연 한국의 베이조스식 벤처를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혹시 소득주도 성장처럼 벤처도 세금만 쏟아부으면 쑥쑥 자라난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민주노총에 기울어진 문 대통령이 아마존의 반(反)노조 노선을 용납할 수 있을까. 고객과 주주에게만 신경 쓰고 직원과 하청업체에 혹독하게 구는 베이조스를 한국의 검찰과 공정위가 가만둘 것인가. 이런 의문들이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한 문 대통령의 ‘제2 벤처 붐’은 허황된 신기루일지 모른다. 정치적 온실 속에 키워진 녹색 성장과 창조 경제가 흔적 없이 사라졌던 것처럼 ….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출처: 중앙일보] [이철호 칼럼] 한국이라면 아마존의 베이조스는 수없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