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강민석의 시선] 공수처 대신 '제2 사직동팀' 만들자고?

bindol 2019. 3. 25. 05:18

강민석 논설위원

강민석 논설위원


일명 ‘김용균법’이 국회를 통과한 게 작년 12월 27일. 보름여 전인 12월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협력업체의 20대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석탄 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앞서 2016년 5월엔 서울 구의역에서 역시 19세의 하청업체 노동자가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서 사망한 비극이 있었다. 두 젊은이 모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일하다 참변을 당했다. 두 젊은이의 희생이 바로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산업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만들게 하는 가슴 아픈 동력이었다.
 
그런 법안이 교착상태에 빠질 뻔했다가 의외의 곳에서 돌파구가 열렸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에 출석하기로 하면서였다. 조 수석을 상대로 특별감찰반 의혹을 추궁할 무대가 마련되자 한국당이 김용균법 통과에 협조하기로 했다. 당시 표결엔 165명이 찬성했다. 이 중에는 나경원 원내대표 등 한국당 의원도 30명 가까이 들어 있었다. 딱 한명(자유한국당 전희경)만 반대했다.
 
잘된 일이긴 한데, 일반인의 상식으론 잘 이해가 안 갈 것이다. 가령, ‘아이폰X’를 교환시장에 내놓으면 ‘갤럭시S10’정도는 나와야 거래가 성립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김용균법이 조국 수석과 무슨 상관이 있길래. 하지만 정치협상이란 늘 그러니 놀랄 일은 아니다.
 
지금 국회 협상 테이블에서 또 하나의 빅딜이 이뤄지려고 한다. ‘선거제 개편안’과 ‘권력기관 개혁안’(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올라와 있다. 초대형 현안이다. “이 둘을 연계시키는 게 맞나?” 한 여당 중진조차 이렇게 고개를 갸웃했지만 민주당이 선거제와 관련해 ‘일부’ 손해를 감수하는 대신 공수처 설치안 등을 나머지 야당이 받아들이면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여야 4당은 이를 ‘패스트트랙’ 열차에 태우려 한다. 패스트트랙이란 국회 소관 위원회 5분의 3 이상이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하면, 일정 기간(330일 이내)이 지난 뒤 표결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시선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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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한국당은 반대다. 특히 선거구제 개편안에 반발이 심하다. 민주당이 정의당과 ‘좌파연합’을 만들려는 의도라고 몰아붙인다. 하지만 뒤를 돌아봤으면 한다. 선거제 개편안의 핵심은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새로운 게 아니다. ‘50% 연동형 비례대표’는 2016년에 한국당 전신 새누리당의 이병석 정개특위 위원장이 처음 제안한 제도다. 이병석 위원장이 설마 좌파연합을 만들어주려고 제안했겠나. 이 제도에 의하면 정의당뿐 아니라 바른미래당도 살길이 열린다. 중도진보 노선을 수용하느냐 마느냐 가지고 격론을 벌이는 바른미래당도 좌파인가.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게 맞냐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여태껏 선거의 룰은 ‘다수결’이 아닌 ‘합의’로 마련해왔다. 불법은 아니라 해도 패스트트랙을 추진하는 정당들에겐 정치적 부담이다. 그렇다고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시 의원직 총사퇴 카드까지 빼 든 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 너무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한국당 입장에선) 다행히도 그 문제로 크게 고민할 일은 없을지 모르겠다.
 
바른미래당의 내홍으로 ‘패스트트랙 동맹’이 삐걱거리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 내의 국민의당 출신(찬성파)과 바른정당 출신(반대파)이 격론을 벌이다 지난 21일 민주당에 통첩성 협상안을 들이밀기로 했다. 공수처를 신설하려면 수사권은 주되, 기소권은 주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걸 민주당이 받지 않으면 패스트트랙은 없다고까지 했다.  
     
기소권 없는 공수처? 예전에 그런 사정기관이 있었다. ‘고위공직자,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를 조사하는 곳. 공수처와 수사범위도 비슷하고, 바른미래당 주장처럼 기소권이 없어 비리를 적발했을 땐 검찰에 은밀히 자료를 넘겼다. 그랬다가 2000년에 해체됐다. 세상은 ‘사직동팀’이라 불렀다. 애초 공수처를 만들겠다는 이유가 무소불위하다는 검찰 권력을 견제하겠다는 것인데, 설마 바른미래당의 주장이 겨우 ‘제2의 사직동팀’을 다시 만들겠다는 건 아니길 바란다. 민주당이 받아들일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러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바닷물이 짠 건 소금 때문이다. 바닷물 속에 염분은 한 3.5% 정도다. 국회도 그렇게 소수세력이 짠맛을 나게 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그랬다. 그런데 바른미래당은 당 대표가 단식까지 하면서 용케 길을 열어오더니, 내분 때문에 스스로 그 길을 막으려 한다. 죽도 밥도 안되는 것보다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가 좀 되게 하는게 살길이다.
 
강민석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강민석의 시선] 공수처 대신 '제2 사직동팀' 만들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