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박정훈 칼럼] '김의겸 건물'은 무너진 자영업의 폐허였다

bindol 2019. 4. 5. 05:50

잘못된 정책이 약자들의 성공 기회를 빼앗고 있다
정부가 국민 상대로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고 있다

박정훈 논설실장
박정훈 논설실장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25억원에 사들인 재개발 건물은 시세보다 싸게 나온 급매물이었다. 39년간 운영하던 건물주가 급전에 쪼들려 내놓았다고 한다. 김 전 대변인이 매입하자 기다렸다는 듯 호재가 잇따랐다. 일주일 만에 서울시장의 용산·여의도 통개발 언급이 나왔고, 석 달 뒤엔 사업시행 인가가 떨어졌다. 몇 달 사이 건물값이 10여억원 올랐다. 줄줄이 호재가 기다리는 줄 알았다면 원래 건물주가 급하게 팔진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의 정보력과 베팅 감각이 한 수 위였다.

신문에 실린 현장 사진이 처연했다. 40년 다 된 낡은 상가는 불경기가 휩쓸고 간 쇠락의 흔적이 역력했다. 원래 음식점 3곳이 영업하던 곳이었다. 그중 치킨집과 호프집 두 곳이 망해서 문을 닫았다. 건물주 딸이 하는 냉면집마저 종업원을 내보내고 주인 혼자 버티고 있었다. 건물주 측은 "하도 힘들어 어쩔 수 없이 팔았다"고 했다. 무너진 서민 경제의 현장을 돈 냄새 맡은 청와대 고관이 치고 들어왔다. 치킨집이 문 닫고 호프집이 폐업한 자영업의 폐허 위에서 청와대 대변인이 은행 돈 빌려 재테크 판을 벌였다. 이 정부가 그렇게도 비난하는 약육강식의 '정글 자본주의'가 펼쳐졌다.

'사다리 걷어차기'란 말이 있다. 부자가 된 선진국이 후발국엔 다른 룰을 강요해 선진국 진입을 막는다는 개념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바로 그렇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성공 방식과 다른 규칙을 국민에게 들이대고 있다. 자기들은 갖은 수단 다 동원해 축재(蓄財)하고 이익을 챙기면서 다른 사람에겐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한다. 보통 사람이 돈 벌고 성공할 기회를 막아 놓고 자기들은 온갖 편법과 변칙, 꼼수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 정부는 국민에게 부동산 재테크를 하지 말라고 했다. '투기와의 전쟁' 운운하며 "사는 집 아니면 파시라"고 겁주었다. 그러면서도 고위 공직자 중엔 다주택자가 넘쳐나고 위장 전입과 '갭 투자'가 다반사였다. 어떤 장관은 집 5채를 보유 중이고, 어떤 장관 후보는 재개발 딱지로 15억원을 버는 수완을 보여주었다. 이 정부는 학벌주의를 없애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청와대 수석에서 전교조 출신 교육감까지, 수많은 공직자가 자녀를 외고·자사고에 넣고 미국에 유학 보냈다. 자기 자식만 엘리트 교육을 받게 하고 남은 못 하게 막겠다는 심보와도 같다. 서민 정당임을 자처하는 여당 의원의 재산액은 평균 38억원에 달했다. 부(富)의 축적을 죄악시하면서 자기들은 알뜰하게 재산을 모았다. 놀라운 위선이다.

이 정권의 통치술은 '분노의 철학'에 기초하고 있다. 야당 시절 그들은 약자(弱者)들에게 "왜 분노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보수 체제의 성공 프레임을 거부하고 저항해서 판을 뒤엎자고 촉구했다. 청년들에겐 '노오력'(노력을 비아냥대는 말)을 때려치우라고 했다. 스펙 쌓으려 헛고생 말고 짱돌 들고 거리로 나서든지 선거 때 투표장에 가라고 했다. 그들 뜻대로 '촛불 혁명'이 일어나 좌파가 권력을 잡았다. 이념 지형이 뒤집혔지만 약자들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아지긴커녕 힘없는 사람이 더 힘들어지고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는 세상이 펼쳐졌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가 온 국민의 평생을 책임지겠다며 '포용국가론'을 제시했다. 정부가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지갑도 채워주겠다고 약속했다. 경쟁에서 이기려 애쓸 필요도, 좋은 학교에 가려 고생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환상적인 비전이었지만 허언(虛言)임이 드러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저소득층 지갑은 더 얇아졌다. 성장 활력이 사라지면서 약자들이 성공할 기회는 더욱 쪼그라들었다. 소득 주도 성장이 서민 경제를 박살 내고, 최저임금 인상이 빈곤층을 실업자로 만들었다. 잘못 설계된 정책 오류의 부작용이 저소득 서민층에게 집중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정작 권력층과 그 주변은 정권의 허언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더 열심히 집 사고 재개발 딱지 사고 자녀에게 엘리트 교육시키는 데 몰두했다. 수많은 청년이 공무원 시험의 로또 같은 확률에 청춘을 바치는 동안, 권력층 자제들은 명문 학교를 거쳐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불패(不敗)의 성공 코스를 밟았다. 무모한 정책으로 자영업자와 영세 상인들을 망하게 해놓고, 자기들은 부동산 재테크로 재산을 불려가고 있다. 그러면서 국민에겐 정부만 믿고 있으라고 한다. 약자와 청년들을 영원히 가난의 굴레에 가둬놓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기회는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구호는 한낱 우스갯소리가 됐다. 온 국민 상대로 성공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정부가 정의로울 수 없다. '내로남불'이나 염치없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이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04/20190404035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