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기자수첩] 文정부 경제활성화정책, 민간은 왜 '진정성'을 의심하는가

bindol 2019. 4. 10. 05:47
"정부가 요즘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풀고 기업들을 지원하다지만, 실제 현장에서 보면 ‘말 따로 행동 따로’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만 봐도 그렇습니다. 말로는 혁신성장을 돕겠다, 대기업에 대한 옥죄기식 조사 안하겠다 하지만 지금도 계속 기업들이 줄줄이 털려나가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김상조 공정위원장과의 조찬 간담회(공정거래실천모임·서울대·고려대·서강대 공동 주최)에서 만난 대기업 대관 부서 직원들과 대형 로펌 변호사들은 숫제 입이 비쭉 나와있었다. 말로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풀고 기업 애로사항을 해소하겠다고 하지만, 정책 기조가 바뀐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초면인 기자 앞에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발언을 쏟아낸 이들은 구석지 말석(末席)에 앉은 30대 후반~40대 초반 직원들이었다. 한창 실무를 담당하는 이들은 정책 기조 변화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다며 불신에 가득 차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당·정·청(黨政靑) 수장들이 연일 경제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자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고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는 내용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예산타당성평가 완화, 민자 SOC 확대 등 토건 투자 장려책도 내놓았다.

작년 하반기 취업자수 증가폭이 10만명 밑으로 떨어지면서 가뜩이나 노동시장이 얼어붙어있는데, 경제성장률마저 고꾸라지면 가계의 ‘먹고 사는 문제’가 치명타를 맞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정책변화’를 거론하는 듯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ADB(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기구와 스탠더드앤푸어스(S&P)·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2.8% 안팎에서 2.1~2.6%로 줄줄이 하향조정하는 등 경제상황이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정부 정책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정부 부처 공무원들도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지난달 7일 사실상 택시 업계의 승리로 막을 내린 택시-카풀 대타협은 정책 변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담당 부처 공무원들은 "국회가 중재를 맡겠다고 나선 이상 예견됐던 일"이라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택시 기사들은 매일 수십명씩 승객들을 만나면서 ‘입소문’을 옮기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상당수가 한 지역에 수십 년 동안 거주한 토박이로 ‘골목길 정치’에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청와대나 정부가 이들의 반발을 각오하고 공유경제 서비스를 확대하는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무원들은 일찌감치 내다봤다. "청와대가 국회에 해당 사안을 넘기기로 결정한 것 부터가 승차공유 관련 규제 개혁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한 과장급 공무원은 씁슬히 말했다.

경제 활성화 정책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가장 큰 이유는 몇 가지 레토릭 이외에 바뀐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만 해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핵심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여전히 중책을 맡고 있다. 홍장표 전 경제수석처럼 일선에서 물러나도 외곽에서 ‘역할’이 주어진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참여연대·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라는 좁은 ‘서클’에서 정책이 나오는 양상은 같다. 심지어 "청와대 정책실 내부에서는 (동고동락했던) ‘80년대 학번’만 믿지 (학생운동이 약했던) 90년대 학번은 믿지 않는다"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오가는 실정이다. 이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


1931년 세계 대공황 당시 미국에서 공짜 수프를 먹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피터 테민 미국 MIT 교수 등 경제사학자들은 각국 정부가 금본위제 등 시대에 맞지 않은 정책을 고수한 것이 대공황을 불렀고, 몇 년에 걸친 정책 변화를 통해 대공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소득주도성장은 세계적으로 족보있는 이야기’라는 문재인 대통령 발언은 정책변화의 싹을 자른 것 같다. 소득주도성장의 원형인 임금주도성장 이론은 포스트케인지언(post-Keynesian) 내에서도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불과하다.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한 2년 동안 변변찮은 정책패키지 하나 내놓은 게 없어 정책으로서도 효용성이 떨어진다. ‘소득주도성장을 하면서도 적극적 재정정책이 부재(不在)했다’는 일부 진보성향 학자들의 비판에도 묵묵부답이다. 청와대 막후 실세인 박종규 재정기획관이 "기재부가 협조하지 않아서 그렇다"라는 반응을 비공식적으로 보였다는 이야기만 들릴 뿐이다.

가계,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이 정책 기조가 바뀌었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받아들이느냐 여부는 경제 문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정책 기조, 결정 방식, 고위 의사 결정자, 이데올로기 등이 결합된 이른바 ‘정책 레짐(policy regime)’ 변화는 경제 주체의 인식 변화로 마무리된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도 핵심은 경제 정책이 문제였다는 게 경제사 연구 결과다. 대공황 연구의 권위자인 피터 테민 미 국 MIT(매사추세츠공과대) 교수는 "경제 정책의 실패가 (대공황의) 원인이었으며 경제 정책이 변화되고서야 회복이 시작되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정책전환 의지를 경제주체들이 인식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테민 교수의 지적에 비추어보면, 불황의 늪에 빠져가는 경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전혀 도움을 주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