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터치! 코리아] 이익 앞에선 의로움 저버리는 공직자 후보들

bindol 2019. 4. 13. 06:06

사람 판단할 때는 말보다 행동
꼼수 투자, 위장 전입하면서 공익 봉사 다짐하는 후보자들… '꼬붕' 안 되면 그나마 다행

김태훈 출판전문기자·논설위원
김태훈 출판전문기자·논설위원


사람을 판단할 때는 말보다 행동을 보는 게 세상 이치다. 이 점에서 대한민국 청문회장은 산교육장이다. 기존에 했던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하면서 '말이란 믿을 게 못 된다'는 사실을 입증한 고위 공직자 후보들 덕분이다.

헌법재판관 되겠다는 판사가 자신이 맡은 재판과 관련 있는 기업 주식에 거액을 투자했고, 그 배우자는 주가에 영향을 주는 주요 공시를 전후해 주식을 대량으로 사고팔아 내부 정보를 이용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대한민국은 그러고도 "불법은 없지 않으냐?"며 감투를 쓰겠다고 나설 수 있는 나라다. 한 술 더 떠서 "헌법재판관이 되면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한다. 어느 국민이 그 말을 믿겠는가.


노예를 해방시킨 미국 대통령 링컨은 말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다. 대통령 되기 전 변호사였던 그는 늘 셰익스피어를 펴놓고 말과 글을 연마했다. 민주주의의 뜻을 가장 잘 표현한 게티즈버그 연설도, "노예제 찬반으로 분열된 나라를 그대로 두고 번영을 이룰 수 없다"며 단결을 호소한 '분열된 집(House Divided)' 연설도 그냥 나온 게 아니다. 1860년, 유력지 시카고 트리뷴은 링컨을 대통령으로 추대하자며 그 이유를 이렇게 썼다. '그는 음모를 꾸미거나 정치적인 야합을 할 사람이 아니다.' 믿을 수 있는 공직자 후보란 얘기였다. 말을 잘해서 받은 평가가 아니었다. 그는 냉철한 변론으로 유명했지만 돈 계산에선 손해를 보면서까지 남을 위하는 처신으로 더 유명했다. 링컨 덕분에 농장이 은행에 넘어갈 뻔한 위기에서 벗어난 한 의뢰인이 50달러를 내놓았다. 링컨은 "10달러면 되겠소"라며 40달러를 돌려줬다. 수임료를 먼저 받은 사건은 검토해보고 승산이 없으면 돈을 전액 돌려줬다. 이익 앞에서 그는 계산에 둔한 바보가 되는 쪽을 택했다. '뱀처럼 영리한데도 비둘기처럼 무해한' 변호사란 명성이 전국에 퍼졌다. 그 명성이 무명의 시골뜨기 변호사를 단숨에 백악관 주인으로 밀어올렸다.

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우리 국민은 링컨 같은 후보는커녕 이익 앞에서 의로움을 버리고, 자신에게 손해될 일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는 삶으로 일관해온 사람들 때문에 마음을 상한다. 아이 교육 문제면 망설임 없이 위장 전입하고, 본인 소득이 있어도 자식들 건강보험에 이름을 올려 푼돈을 아낀다. 꼼수 증여, 딱지 투기 다 해놓고 입으론 "국민을 위한 봉사"를 다짐한다.

공직은 유혹이 많은 자리다. 위로 올라갈수록 더하다. 끗발 없던 시절에도 작은 이익에 휘둘리고 사소한 탈법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던 이가 힘 있는 자리에 갔다고 갑자기 사익보다 공익을 앞세울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자리 만들어준 사람만 바라보는 '꼬붕'으로 전락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스탈린 시절 옛 소련 공직자들은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하며 자리를 보전했다. 하지만 국민이 자신의 주인임을 자각한 이들도 있었다. 2차대전 당시 소련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 수백만 명이 900일 가까운 독일군의 봉쇄 속에서 식량이 떨어져 굶어 죽었다. 그곳 종자 보관소 직원 수십 명도 죽었는데, 사망 장소가 쌀과 밀로 가득한 곡물 창고였다. 국민이 연구하라고 준 것이지 먹으라고 준 게 아니라며 쌀더미 옆에서 아사(餓死)했다. 스탈린이 아니라 '어머니 러시아'에 봉직하는 공직자라는 사명감으로 그렇게 했다. 이 땅에도 한때 공직자의 사명을 무겁게 짊어진 이들이 있어 번영을 일궜다. 지금은 드문 것 같다. 나라가 쪼그라드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12/201904120326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