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여론&정치] 리얼미터의 이상한 설문

bindol 2019. 4. 22. 05:35
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
홍영림 여론조사전문기자


얼마 전 리얼미터는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55%) 여론이 '적격'(29%)보다 훨씬 높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다음 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중대한 흠결이 없다"며 "(여론조사를 다시 하면) 더 좋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했다. 이 대표의 주장에 화답하듯 리얼미터는 이틀 뒤 이 후보자 임명 '찬성'(43%)과 '반대'(44%)가 비슷하다며 확 바뀐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그 직후 해외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전자 결재로 이 후보자 임명을 강행했다. 여권(與圈) 입맛에 맞는 여론조사가 임명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준 셈이다.

하지만 질문 내용이 달라져서 응답 수치가 달라진 것이지 여론이 바뀐 게 아니었다. 리얼미터 첫 조사 질문은 '이 후보자의 헙법재판관 자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였다. 두 번째 조사는 '문 대통령이 청문 보고서를 국회에 다시 요청했다. 문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였다.

여론 변화를 보기 위해선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게 기본 상식이지만 굳이 상식을 깨면서 질문을 바꿨다. 이 후보자를 '부적격'이라고 한 사람도 대통령이 임명하겠다고 마음을 굳히면 현실을 감안해 '찬성'이라고 답할 수 있다. 특히, 바뀐 질문에선 '문 대통령'이 두 차례나 등장했다. 마치 문 대통령 지지층에게 이 후보자 임명 찬성을 유도하는 총동원령을 내리는 듯했다. 실제로 이 후보자에 대한 문 대통령 지지층의 긍정 여론은 54%에서 77%로 치솟았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입맛대로 여론 호도(糊塗)'를 바탕으로, 자신의 뜻에 맞는 여론만 따르겠다는 '독불장군'식 국정 운영이다. 이 후보자 임명에 대해 문 대통령 반대층은 끝까지 대다수(83%)가 부정적이었지만 이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 물론 애당초 지지층과 반대층 모두 수긍할 만한 후보자를 내세운 것도 아니었다. 다른 현안도 비슷했다. 이달 초 박영선·김연철 장관 후보자 임명에 대해서도 지지층은 '긍정'(82%)이 다수였지만 반대층은 '부정'(81%)이 다수였다. 역시 반대층 의견은 철저히 무시됐다. 소득 주도 성장도 지난 2월 엠브레인 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층은 '계속 추진'(64%)이 다수인 반면 반대층은 '수정 및 재검토'(85%)가 압도적이었다. 정부는 경제 정책도 지지층 의견만 떠받들고 있다 .

여당은 20년, 50년, 100년 집권론을 주장하더니 최근엔 총선에서 300석 중 260석을 '싹쓸이'하겠다고 했다. 이런 황당한 발언을 되풀이하는 것도 지지층 결속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 측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들은 더욱 소외돼 가고 있다. 원칙을 무시하는 여론조사와 한쪽 말만 듣겠다는 권력이 우리 사회를 더욱 갈라놓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21/20190421022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