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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혹은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국방부, 이 두 곳에서 하는 일을 보면 그들이 어리숙한 것인지, 아니면 국민과 언론도 자신들처럼 어리숙할 것이라고 믿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도 제일 윗선에서 하라는 대로 할 뿐이에요. 우리도 죽을 맛이에요" 하고 있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삼척항 입항 귀순 사건’, 어제 정부 합동조사 결과 발표가 있었다. 한마디로 ‘두루뭉수리 어물쩍 넘어가기’, ‘눈 가리고 아웅’, ‘희생양 내놓기’ 이런 발표다.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미스터리는 여전하다. 하나씩 따져본다. 첫째 나무로 만든 똑딱선을 타고 내려온 사람은 모두 4명이다. 이중 2명만 귀순하고 2명은 돌려보낸 이유가 무엇인가. 정부 합동조사 발표에는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이 없다. 정부는 최초 발표 때 "4명 모두 귀환 의사를 표명했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2명만이 "출항 때부터 귀순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바꿨다. 그리고 정부 조사는 귀순한 2명에 대해서도 별로 명예롭지 못한, ‘불순한’ 이유를 강조하고 있다. "가정불화가 있었다." "육상탈북을 시도하다 체포된 전력으로 수감생활을 했다." "한국영화 시청 혐의로 조사 처벌을 받을 것을 두려워했다." 등등이다. 목숨을 걸고 자유 대한의 품으로 넘어온 사람에 대해 정부 조사는 그들이 ‘북한 체제에 염증을 느꼈다’든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동경했다’든지 하는 이유를 찾아내지 않았다.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을 폭로할 만한 내용도 전혀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 조사는 귀순자에 대해 북한에서의 범법자 비슷하게 말하면서 여전히 평양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 또 하나는 목선 발견 장소를 ‘삼척항 인근’, 즉 ‘인근’이라고 표현한 부분에 대해서 정부 조사는 흐지부지 하고 말았다. 정부 조사는 "대북 군사보안상 통상적으로 쓰는 용어"라고만 설명했다. 이 부분도 많은 군사 전문가들이 "말도 안 되는 해명"이라고 지적한다. 군 지휘관들은 ‘좌표 찍는 일’이 매일 하는 일과라는 것이다. 좌표는 거의 1미터 단위로 쪼개서 찍는다. ‘인근’이 ‘통상적으로 쓰는 용어’라니 이 사람들은 군 복무는 자기들만 하는 줄 아는 모양이다. ‘보안’이니, ‘통상’이니, 이런 말로 어물쩍 넘어가고 있다. ‘삼척항 입항’은 북한 목선이 자체 동력으로 운항하면서 우리 경계망을 교묘히 뚫어서 정확한 좌표를 갖고 목표지점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삼척항 인근’이라는 것은 목선이 해류를 타고 표류하다가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고 인적(人跡) 없는 해안선에 닿았다는 뜻이다. ‘삼척항 입항’으로 보느냐 ‘삼척항 인근’으로 보느냐는 이번 사건의 본질을 따지는 문제다. 간첩선이란 의혹을 가질 수 있느냐, 즉 북한이 우리 동해 경계망을 테스트한 결과냐, 아니면 어부들의 단순 월남이요 똑딱선 표류냐, 이걸 가르는 판단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유근 청와대 안보실 1차장에게 ‘엄중 경고’를 했다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대통령은 지금 최초 국방부 브리핑 때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이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질책하는 것인가. 차관급인 ‘안보실 1차장’이 정경두 국방장관을 제대로 지휘하지 못했다고 나무라는 것인가. 정부 조사단은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 안보실은 국민이 불안하거나 의혹을 받지 않게 소상히 설명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 안이하게 판단한 측면이 있다." 자, 그래서 문 대통령이 안보실 1차장을 엄중 경고했다면 진짜 대통령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안보실은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해야 하는’ 책임을 지는 곳인가. 그렇다면 왜 진즉부터 이런 일이 터질 때 안보실 실장이나 차장이 직접 대국민·대언론 브리핑을 하지 않았는가. 안보실 1차장은 국방부 장관을 지휘하는 자리인가. 국방부 장관이나 국방부의 브리핑 담당관들은 청와대가 짜준 각본대로 읊조리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인가. 국민들에게 설명하기 난감하니까, 청와대와 국방부에서 한 명씩 책임을 지고 넘어가자, 누가 총대를 멜 것인가, 이렇게 정리하기로 결정이 났고, 청와대에서는 김유근 안보실 1차장 엄중 경고, 군에서는 이진성 8군단장 보직 해임, 이렇게 ‘꼬리 자르기’를 하고 넘어가는 것이라고 보인다. 국민들은 이런 일련의 사태가 오로지 문 대통령의 대북 유화정책에서 빚어진 일이요, 그리고 작년 9.19 남북군사합의 때문에 우리 군 경계망이 눈을 감고 있고, 우리 군이 북한 눈치 보기, 청와대 눈치 보기를 하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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