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기자의 시각] '과거 윤석열' 내쫓는 윤석열

bindol 2019. 8. 6. 03:45
조백건 사회부 법조팀장
조백건 사회부 법조팀장


지금의 윤석열을 만든 건 2013년 10월 21일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회 국정감사였다. 그는 그때 국정원 댓글 수사팀장이었다. 전국에 생중계되는 국감장에서 그는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심각했다"고 말했다. 외압의 주체로 당시 황교안 법무장관을 지목하기도 했다. 정치권 평가는 극단으로 갈렸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그를 '정치 검사'라고 했지만 야당 민주당은 '의인(義人)'이라고 했다. 그를 추켜세운 세력이 집권하자 그는 초고속으로 검찰총장이 됐다.

인상적이었던 건 그의 '정체'보다 '배짱'이었다. 그는 당시 국감장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은) 선거 사범 사상 유례없는 중대 범죄"라고 했다. 선거를 통해 들어선 박근혜 정권의 정당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말을 생중계 현장에서 한 것이다. 정권의 서슬이 가장 시퍼렇던 집권 1년 차였다. 일개 수사팀장인 그는 이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굽히지 않았다. 정권 뜻대로 부려지는 조직인 줄 알았는데 저런 사람도 있구나 싶어 신선했다.

그런 윤석열이 지난달 25일 총장으로 취임했다. 곧바로 검찰 간부 인사가 이어졌다. 간부 60여 명이 옷을 벗었다. 가장 눈에 띈 건 주진우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의 사표였다. 그는 현 정부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를 이끌었다. 그의 수사는 도발적이었다. 현 청와대와 환경부가 짜고 전(前)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을 내쫓고 그 자리에 현(現) 정권 사람을 앉힌 것이 직권 남용이라는 것이었다. 여권에선 "다 이렇게 해왔는데, 왜…"라는 말이 나왔다.

그동안의 관행에 직권 남용이라는 법을 적용해 전 정권 사람들을 줄줄이 감옥 보낸 게 현 정권 검찰의 '적폐 수사'였다. 주진우는 이 '적폐 수사'의 칼날을 현 정권 심장부인 청와대에 들이댔다. '촛불 민심'을 등에 업은 현 정권의 위세에 눌려 찍소리도 내기 어려운 집권 2년 차였다. 움찔한 청와대는 "(환경부)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체크리스트"라며 허둥댔다. 이 수사를 놓고 본다면 주진우는 현 정권의 '윤석열'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인사에서 한직으로 밀려났고 사표를 냈다. 그는 내부 온라인망에 글을 올려 '검사로서 명예와 자긍심이 엷어졌다'고 했다.

같은 시기 검찰 한복판에선 잔치가 벌어졌다. 윤 총 장과 함께 '적폐 수사'를 벌였던 '윤석열 사단' 검사들이 대거 승진해 대검 참모가 되거나 서울중앙지검 요직을 꿰찼다. '정권에 충성하면 승진하고 찍히면 퇴출'이라는 경고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주진우의 사표는 윤석열 검찰에서 '윤석열'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상징한다. 꼬장꼬장한 '윤석열' 없는 검찰은 정권에 배를 보이며 눕는 충견(忠犬)일 뿐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05/2019080502544.html